건축학 개론
주인공이 납득이의 품에 안겨 엉엉거리며 눈물을 흘릴 때 같이 눈물을 흘렸다. 씨봘,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라며. 첫사랑이 떠올라서라기보다는 2002년 흑석동 파전집에서 쪽팔려하는 친구들을 옆에 두고 맥주잔을 들고 존나게 눈물을 흘렸던 처량한 스스로가 떠올라서.
건축학 개론을 보고 나오면 연인들끼리는 싸운단다. 너 첫사랑은 언제였어? 누구였는데? 어땠어? 만약 한 쪽이 꼬임에 빠져 이야기보따리를 술술 풀어놓으며 감상에 젖으면 그날은 ‘볼 장 다 본 날’이란다. 특히 상대를 앞에 두고 앉아 고개를 약간 든 상태에서 가늘게 눈을 뜨고 눈동자는 약 15도 밑으로 떨어트리면서 그윽한 표정을 짓는다면 납득이를 찾아가야 될지도 모른다.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하고 끝을 맺은지 나도 10년이 된 것 같다. 상처를 받고 아픔을 주기도 하고. 싸우고 매달리고 울고 붙잡고. 건축학 개론의 주인공이 된 적도 있고 납득이가 돼서 훈수랍시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닌 적도 있다. 이제는 30 대 중반의 중후한 나이를 향해 가는 순간에, 첫사랑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것은 순수한 사랑의 아련한 추억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밀고 당기며 연애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 뿐. 정답은 물론 없겠지만.
첫사랑이 아련하고, 깨끗해 보이는 것은 오직 상대만을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순수함 때문이다. 단, 첫사랑이 이렇게 남으려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서로 좋아하면 안 된다. 영화처럼 10년, 20년 뒤 서로를 좋아했었다, 이렇게 뭔가 남기면 안 된다. 그냥 한 쪽만 존나게 좋아하다가 열라 비참하게 채여야 한다. 그게 맞다고 본다.
암튼, 애인이 없는 나는 건축학 개론을 보고 마음껏 첫사랑을 생각하고 돌이켜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순수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이제 그렇게 하라면 할 수 있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