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씨

그날이 오면

방바닥 2007. 8. 26. 16:32
 직장을 다니던, 혹은 '사업' 이란 것을 하던, 모든 것을 접고 난 뒤에는 조용한 삶을 살고 싶다. 딸이 두 명이던, 아들이 두 명이던, 혹은 딸과 아들 한 명씩 둘이었으면 좋을 자식들이 자신들의 짝을 찾아 나간 뒤에는 하고 있던 일을 접고 서울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조그마한 집을 마련하고 나의 아내와 둘이 조촐한 아침, 점심, 저녁을 해 먹으며 소박하게 살고 싶다. 쌀밥과 김치 한 점, 시원한 물 한 잔과 짜지 않은 된장국이면 무엇이 부족할까. 가끔 별미로 국수나 비빔면을 말아 먹으며 그렇게 오손도손, 나의 아내와 하루를 보내고 싶다. 작은 집에서 둘이 사는데 빨래가 많이 나올까. 많이 나오면 나오는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세탁기에 돌려가며 빨래를 널고 마루에 앉아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치워가며 걸레질 한 번, 두 번, 힘들면 아침과 점심, 저녁으로 나누어 사위, 혹은 며느리에게 깔끔떠는 시아비, 시어미로 오해 받으며 지내고 싶다. 방 한 켠에는 커다란 책장을 두련다. 그간 내가 읽었던 책들을 펼쳐보며 다시 읽고 젊은날의 기억을 되돌이키며 내가 얼마나 자랐는지, 나이를 먹은 값은 하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하고 싶다. 자식들에게 자주 신경쓰이게 행동을 하거나 들르기를 원하면 자식 부부사이에 불화가 일 수 있다고 하니 명절날이나 혹은 생일날이 아니면 자식들을 찾지 않으려 한다. 손주녀석들이 보고 싶을 때는 아내와 손 붙잡고 바람쐬는 기분으로 자식의 집을 찾으면 될 것이고 손주들의 선물로는 동화책과 그들을 유인할(?) 과자 한 봉지면 되지 않을까.
 아침잠이 없어질테니 일찍 일어나 아내와 함께 집 주변을 산책하거나 간단한 스트레칭과 맨손체조로 건강도 챙기고 싶다. 아침을 먹고 그 날 하루의 계획을 아내와 함께 논하고 아내에게 그 날 내가 해 줄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싶다. 할 일이 없으면 조용히 책상에 앉아 하루 종일 아무런 근심, 걱정없이 책을 읽으며 지내고 싶다.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아야하니 신문도 하루에 한 부씩은 꼭 읽어야 겠다. TV는 놓고 싶지 않지만 이 문제는 아내와 상의가 필요할 듯 싶다.
 그리고 나만의 블로그를 통해서 나의 생각들을 옮겨 기록하고 싶다. 그때도 물론 부끄럽고 부족한 글 투성이겠지만 나이 먹은 할아비의 글이라 여기고 넓은 아량으로 심한 태클은 없지 않을까. 그런 나의 생각들을 모아 아내와 이야기하고, 아내의 생각을 들으며, 그리고 서로 이야기하며 수십년 살아왔지만 아직도 모를 한 사람에 대해서 계속해서 알아가고 싶다.
 그렇게 나의 아내와 친구로, 말동무로, 서로의 가려운 등을 긁어주는 존재로 지내며 생을 마감하고 싶다. 내가 먼저 눈을 감으면 남아 있을 아내의 아픔을 죽어서도 견딜 수 없을 것 같기에 아내의 눈을 내가 감겨 주고 싶다. 그렇게 남아 홀로 그 사람을 그리워 하며 편지를 쓰고 남은 생을 정리하다가 그녀의 곁으로 가고 싶다.
 
 꿈같은 나의 황혼, 그리고 내 옆에 있을 그 사람. 이를 위해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 열심히 공부하는 것? 토익에 매달리는 것?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 무엇일까. 근심 걱정 없이 살기 위해서는 넉넉한 돈이 필요하다는 것? 넉넉한 돈이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에 나를 맞추는 것? 아내의 기준에 나의 모든 것을 끼워 가는 것? 답이 나오지 않는 보기들을 열거해 보는 것보다, 오늘 나의 하루에 충실하는 것, 그리고 그 하루가 내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정답'은 아니지만 틀리지 않은 답이 아닐까 싶다. 너무 이상적이가. 그렇다면 아직 깨지지 않은 나의 순수한(!?) 젊음과 생각을 쓰다듬으며 무엇이 현실적인가를 고민해야 할 듯. 아 쌍! 그렇게 되면 현실과 이상에 대해서 또 생각해 봐야 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