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꿈
방바닥
2009. 4. 9. 01:25
"꿈이 있어야 합니다.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교육 시간에 푹 삶아 늘어진 비겟살처럼 흐믈거리는 교육생들을 앞에 두고 영 강의할 맛이 나지 않으셨는지 강사님께서 동영상 강의를 보여주셨다. 나 역시 무섭게 감기는 두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리다 이마를 책상위에 붙인 채 잠이 들고 말았는데 강연의 핵심내용은 "꿈이 있어야 합니다.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였다. 그래야 자신처럼 유명해진대나 어쨌대나, 하여튼.
없는 실력으로 한창 기자를 꿈꾸던 군복무시절,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신문을 파고 사설을 외웠다. 어줍잖은 글들을 써내려가며 이것저것 참으로 많은 책을 뒤적였고 영어 공부 및 상식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때는 확고한 꿈이 있었다. 비록 게으름과 능력 부족을 탓하며 '기자'라는 꿈은 언감생심 고이고이 접어 속주머니 속에 쏘옥 끼워 넣었고 자식을 낳으면 신문지에 돌돌 말아키워야지 라며 위안(?)을 삼았지만 그래도 당시 확고한 목표 덕에 나풀나풀 봄날에 흩날리는 벚꽃처럼 내 의지는 약하게 흔들리지 않았었다. 그리고 나의 단단한 무게 중심으로 언제나 내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결국 엔지니어의 길로 들어서 사회로 첫발을 내딛은 지금, 갈팡질팡 거리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과 의지력의 부족은 꿈이 얼마나 중요한가, 인생의 목표가 얼마나 필요한가를 절실히 깨닫게 한다. 인생의 큰 목표로 "난사람" 보다는 "된사람" 이 되겠다는,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는 거창한 계획은 세워 놓았다만 가지쳐 흘러나오는 작은 계단 공사는 아직도 미완성이다. 화목한 가정을 만들자,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자, 라는 말은 꿈이 없는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변명거리에 불과하지 않을까.
가만히 앉아 2010년 29살, 2011년 30살.. 쭉쭉쭉 2050년 69살까지 써내려갔다. 30대에는 이것을 하고 40대에는 저것을 하고 50대에는 요것을 할까, 라는 항목 하나하나를 생각해 보니 결론은, 이렇게 살아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 인생의 계획이 있기에 나는 지금 이 길을 선택했다, 라고 말을 해 보지만 아직 그 꿈과 목표는 흐리멍텅하기만 하다. 어쩌면 아직 내가 선택한 직장에서 눈에 보이는 '일' 을 해본적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이것도 나약한 나 자신에 대한 변명이 아닐까.
지난 3주간 울산에서의 칼퇴와 함께 탁구와 볼링, 당구를 즐기며 시원스럽게 놀았다. 오며가며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많은 생각들을 이어가긴 했지만 아직도 주먹을 꽉 쥘만큼의 확고한 '무언가'가 부족하다. 아직 밑그림 단계.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 라는 책을 읽으며 그의 해바라기 그림을 롤모델 삼아 가슴 벅차게 살아보겠다던 2004년도의 젊었던 그때가 문득 떠오른다. 그의 감각적인(개뿔 미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_-) 붓터치처럼 나만의 해바라기를 하나 둘 완성해 가자던 의지력은 대체 어디간걸까.
조금 더 열심히 살자, 조금 더 부지런해지고 조금 더 잠을 줄이고 조금 더 뻘짓(!)을 줄이자. 7주간의 울산교육 일정이 또 다시 앞에 나타났다. 제길슨, 막막하긴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밑그림을 완성시키고 연구소로 돌아가는 그 날, 화려한 손놀림으로 나만의 화법을 익혀보자. 불안해 말고, 어려워 말고, 의심하지 말고, 그렇게 그렇게 날자꾸나 원씨!
일단... 다음주에 소고기와 막창집 한 번 더 가고..-_-;;;
교육 시간에 푹 삶아 늘어진 비겟살처럼 흐믈거리는 교육생들을 앞에 두고 영 강의할 맛이 나지 않으셨는지 강사님께서 동영상 강의를 보여주셨다. 나 역시 무섭게 감기는 두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리다 이마를 책상위에 붙인 채 잠이 들고 말았는데 강연의 핵심내용은 "꿈이 있어야 합니다.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였다. 그래야 자신처럼 유명해진대나 어쨌대나, 하여튼.
없는 실력으로 한창 기자를 꿈꾸던 군복무시절,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신문을 파고 사설을 외웠다. 어줍잖은 글들을 써내려가며 이것저것 참으로 많은 책을 뒤적였고 영어 공부 및 상식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때는 확고한 꿈이 있었다. 비록 게으름과 능력 부족을 탓하며 '기자'라는 꿈은 언감생심 고이고이 접어 속주머니 속에 쏘옥 끼워 넣었고 자식을 낳으면 신문지에 돌돌 말아키워야지 라며 위안(?)을 삼았지만 그래도 당시 확고한 목표 덕에 나풀나풀 봄날에 흩날리는 벚꽃처럼 내 의지는 약하게 흔들리지 않았었다. 그리고 나의 단단한 무게 중심으로 언제나 내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결국 엔지니어의 길로 들어서 사회로 첫발을 내딛은 지금, 갈팡질팡 거리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과 의지력의 부족은 꿈이 얼마나 중요한가, 인생의 목표가 얼마나 필요한가를 절실히 깨닫게 한다. 인생의 큰 목표로 "난사람" 보다는 "된사람" 이 되겠다는,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는 거창한 계획은 세워 놓았다만 가지쳐 흘러나오는 작은 계단 공사는 아직도 미완성이다. 화목한 가정을 만들자,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자, 라는 말은 꿈이 없는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변명거리에 불과하지 않을까.
가만히 앉아 2010년 29살, 2011년 30살.. 쭉쭉쭉 2050년 69살까지 써내려갔다. 30대에는 이것을 하고 40대에는 저것을 하고 50대에는 요것을 할까, 라는 항목 하나하나를 생각해 보니 결론은, 이렇게 살아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 인생의 계획이 있기에 나는 지금 이 길을 선택했다, 라고 말을 해 보지만 아직 그 꿈과 목표는 흐리멍텅하기만 하다. 어쩌면 아직 내가 선택한 직장에서 눈에 보이는 '일' 을 해본적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이것도 나약한 나 자신에 대한 변명이 아닐까.
지난 3주간 울산에서의 칼퇴와 함께 탁구와 볼링, 당구를 즐기며 시원스럽게 놀았다. 오며가며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많은 생각들을 이어가긴 했지만 아직도 주먹을 꽉 쥘만큼의 확고한 '무언가'가 부족하다. 아직 밑그림 단계.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 라는 책을 읽으며 그의 해바라기 그림을 롤모델 삼아 가슴 벅차게 살아보겠다던 2004년도의 젊었던 그때가 문득 떠오른다. 그의 감각적인(개뿔 미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_-) 붓터치처럼 나만의 해바라기를 하나 둘 완성해 가자던 의지력은 대체 어디간걸까.
조금 더 열심히 살자, 조금 더 부지런해지고 조금 더 잠을 줄이고 조금 더 뻘짓(!)을 줄이자. 7주간의 울산교육 일정이 또 다시 앞에 나타났다. 제길슨, 막막하긴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밑그림을 완성시키고 연구소로 돌아가는 그 날, 화려한 손놀림으로 나만의 화법을 익혀보자. 불안해 말고, 어려워 말고, 의심하지 말고, 그렇게 그렇게 날자꾸나 원씨!
일단... 다음주에 소고기와 막창집 한 번 더 가고..-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