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2
고려대학교에 입학했을 당시에는 '자게사랑' 이라는 커뮤니티가 학교 자유게시판의 기능을 대신했었다. 굉장히 인기 있던 게시판이고 또 재미도 있었기에 나 역시 자주 들락날락 거렸던 기억이 있는데 홈페이지가 바뀌면서 현재처럼 학교 홈페이지 내의 자유게시판으로 자게사랑이 통합되고 말았다. 클릭 한 번으로 입장 가능했던 자게사랑과는 달리 딱딱한 이미지에, 귀찮은 인터페이스에 질려 그 뒤로는 자유게시판을 멀리하게 되었는데 요즘 간간히 들어가 읽는 고려대학교 자유게시판의 내용은 조선일보의 사설보다 격한 논설고문들의 활동판이 되어 있었다. 바로 그 목소리가 고려대학교의 목소리라는 것이 그들의 중론이다.
얼마 전 교정 곳곳에 "병설보건대 투표권을 부정한다" 01x-xxxx-xxxx 쌈xxx 홍길동" 이라는 커다란 플랜카드가 걸렸다. 검은 색 바탕에 노란 색 글씨라는 기깔난 보색 관계를 활용해 눈에 띄는 곳곳에, 특히나 이공계 정문에 떡 하니 걸려 안 볼래야 안 볼수가 없었는데 통합된 보건대생들의 투표권을 부정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게시 목적이었던 같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과 학번, 전화번호를 써 놓고 전화하려면 해라! 라는 강한 배짱으로 학생들의 꽤 큰(!) 지지를 받았다. 그래도 이 사람의 주장을 읽어 보면 그럴 듯 하다. 허나, 그 밑에 달리는 댓글의 유치함은 도를 넘어선다.
"아니, 전문대생으로 들어왔으면 전문대생으로 살아야지, 왜 4년제 생이 되려고 하는거야?"
예상대로 비권을 자처한 고대공감대 선본이 고려대학교 40대 총학생회로 당선되었다. 학교를 놀이판으로 만들지 모른다는 우려는 운동권에 대한 강한 반발에 순풍을 타고 무난한 당선을 이뤄냈다. 그리고 바로 나온 소리는, 출교자들에 대한 온라인 투표를 실시, 그들을 내보낼지, 받아들일지를 정한다는 대자보다. 그들이 내세우는 '고대인들의 진정한 목소리'는 단순히 다수결제였다. 결국 민주주의라는 건데 이 민주주의라는 것의 가장 큰 맹점 중의 하나가 바로 다수의 횡포라는 것을 간과한 듯 보인다. 결국, 법정 싸움은 차치하고라도, 현 학생회가 받아주지 않겠다고 하니 출교자에 대한 출교철회는 힘들 듯 보인다. 언제나 당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이고 그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치 않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출교는 저 멀리 32촌 형의 친구의 삼촌네 집에 살고 있는 개미 한 마리가 죽었다, 라는 말보다도 먼 얘기일 터, 더 말 해 무엇할까.
이것이 고려대학교의 이익이다, 라는 것의 그들의 전반적 논리로 보인다. 마치 FTA가 국익이다! 라고 외치는 국가 앞에 '우리는 국민이 아니냐!' 라고 절규하는 농민들의 한 섞인 울림처럼, 그런 울림들이 학교 곳곳에서 메아리치는 듯 보인다. 허나 이것이 대세란다. 앞으로 고려대학교의 1년, 지켜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