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사랑의 이면
방바닥
2008. 9. 17. 23:15
50억의 인구중에, 아니 대한민국 5천만의 인구 중 달랑 두 명의 남녀가 만나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도 나를 사랑하는 일이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때문에 남녀간에 '사랑' 을 이루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하지만 그만큼 고귀하고 숭고한 것이 바로 사랑이다.
라는 나름의 개똥철학으로 '사랑'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원씨. 사랑이란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팍팍한 이 삶에 산뜻한 데오드란테(!)와도 같은 시원함과 깔끔함을 주며 하루하루를 행복케 하는 그런 것 이라며 어떠한 미사여구로 치장을 해도 모자르다고 지랄지랄을 하는 예찬론자이지만(물론 이는 남녀간의 연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이면의 가혹한 가슴앓이는 사랑이 갖고 있는 장점만큼의 절대치를 포함한 아픈 고통을 수반한다. 그래서 뭐든지, 절대선이란 없는 건가.
2002년도 초에 나는 말도 안되는 끼적임 속에 이런 글을 남겼었다. "나를 좋아하는 이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희망고문이라는 박진영의 글을 되새기며 매몰차게 거절했고 얼마 전 내게 고개를 돌린 그 사람을 생각했다. 내게 고개를 돌린 그 사람과 나는 지금 같은 입장이지만 내가 거절한 그 사람과 나 역시 동일한 입장이다. 사랑은 대체 뭘까" 아직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정확하진 않지만 희미하고 가느다랗게 잡히는 '사랑' 이란 바로 '진실' 이었다.
내가 상대를 진실로 바라보고 나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진실된 시각만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사랑'을 잘 할수 있으며 행여 서로가 느껴야 할 아픔을 최소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사랑에 소모되는 엄청난 에너지의 양도 고유가시대에 최소화 할 수 있지는 않을까나. 이런 면에서 나는 너무도 서툴렀다. 우선 내 속도 모르고 빨빨거렸으니 뭐.
짝사랑, 기다림, 두근거림, 실수, 이별, 재결합, 다툼, 차이, 배려등 이런 모든 것들 역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일테다. 서로를 얼마나 보다듬어 줄 수 있는가, 상대의 눈엣가시 같은 행동을 어느 범위까지 안아줄 수 있는가, 흔들리는 이 마음을 어찌해야 하는가,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다른 이를 어떻게 할까, 혹은 짝사랑의 가슴앓이와 그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야 하는 받는이의 안타까움등은 '사랑' 이 갖고 있는 너무도 가혹한 시험이다.
진실, '거짓이 없고 참되고 바른' 진실만이 사랑의 가혹한 시험을 최소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럴때는 그 '진실' 에 대한 끊임없는 피드백과 함께 말바꿈과 후회를 하지 않을 확고함 역시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사랑이란 쉽지가 않은 듯 하다. 때문에 연애를 하며 제 짝을 만나 알콩달콩 함께 하는 일은 더더욱 '일' 이며 굉장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사랑이란,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