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흐름 기법
조깅을 한 지 4개월이 다 되어 간다. 정확히 헬스장 등록이 끝난 6월 10일부터 시작한 조깅. Run keeper라는 어플 덕분에 조깅을 하는 ‘맛’이 생겼다. 등산복-_-과 수영복 바지-_-를 입고 중랑천을 뛰던 나는 어느덧 20만 원 짜리 조깅복과 15만 원 짜리 조깅화, 5만원을 주고 산 암밴드, 달리면서도 빠지지 않는 5만 원 짜리 스포츠 이어폰을 장착하고 중랑천을 벗어나 한남대교까지 7~8km를 달리는 조깅 마니아가 되어 있었다.
얼마 전 500km를 돌파했다. 3개월 만에 이룬 성과, 90일 동안 500km를 달렸으니 하루 평균 5km 이상을 달리고 걸은 셈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중 한 100km는 자전거-_-다. 그리고 나머지 400km 중 또 100km 정도는 걷기-_-였다. 운동을 못할 것 같은 날이면 걸어서 퇴근 하는 것도 Run keeper로 기록을 했고 7km를 뛰면 반드시 7km를 걸었다-_- 무릎이 너무 아파서였다.
살은 조금 빠진 것 같다. 불룩 튀어나왔던 배도 힘을 주고 있으면-_- 쏘옥 들어가고 약간 입기 힘들었던 바지도 이제는 쏘옥 하고 허벅지를 통과한다. 처음엔 5km도 쉬지 않고 뛰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8km 정도 까지는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됐다. 5km 달리는데 걸리던 시간도 40분에서 35분, 30분, 오늘 아침에는 25분으로 단축했다.
달리는 것이 좋은 이유는 잡생각이 없어져서다. 앞만 보고, 숨을 헐떡이면서도 저기 까지만, 저기 까지만, 이라는 생각을 하며 달리면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날 괴롭히던 생각들, 가령 내일 기사 뭘 쓰지-_- 글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 인간관계가 어떻게 하면 나아질까, 거품과 바닥이 드러난 것 같은 연애 활동은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늘어나는 살을 줄이는 방법이 뭘까-_- 어떻게 하면 더 잘 놀 수 있을까!!와 같은 생각들이 날아가 버린다.
비싼 옷을-_- 물론 티는 안 나지만-_- 입고 뛰는 것은 조깅을 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형광색의 조깅복과 반짝이는 스포츠이어폰, 아이폰이 훤히 보이는 암밴드, 하얀색 나이키 조깅화. 누가 보면 선수인 줄 알거다. 달리다가 멈추고 싶어도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더 뛰게-_-된다.
현재 솔로인 상황도 달리는데 도움을-_- 준다 니미럴. 분명 목표했던 7km를 뛰었는데도 저 앞에 이쁠 것 같은-_- 여성이 있으면 그 앞까지 힘차게 더 뛴다-_- 멈추고 싶은데 저 앞에 마주 오는 사람이 여성인 것 같으면-_- 더 뛰게 된다. 니미럴.
하여튼 체력은 많이 좋아진 듯하다. 문제는; 꾸준히 해야 하는데 어떤 날은 일주일 동안 70km가까이를 뛰고 걷는데 어떤 날은 일주일 동안 단 한 번도 못 뛴다는 것. 그리고 술을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일주일 동안 뛰면서 뺏던 칼로리를 다 보충한다는 것-_- 직장인의 숙명일까-_- 의지의 문제일까.
미친 듯이 뛰고 나면 기분이 참 좋다. 하지만 근력운동은 하지 않고 달리기만 하다 보니 배는 조금 빠지는 것 같은데 팔뚝도 얇아지는 것이 문제다. 샤워할 때 배를 앞으로 쭈욱 내밀어 보면 외계인 ET가 따로 없다. 살을 빼기 위해서는 꾸준한 근력 운동으로 근육을 만들어야(근육이 소비하는 칼로리가 많다. 근육이 늘어야 기초 대사량도 늘어난다) 한다는 것을 수많은 취재와 논문을 읽은 결과?? 알게 됐지만 뛰고 오면 진이 빠져서 다른 운동을 못 하는 것도 문제다.
요즘은 무릎이 아프다. 찌릿거리기도 하고 심하게 뛴 다음 날에는 뛰기가 힘들 정도로 통증이 올 때가 있다. 양쪽 무릎 연골이 기형이라 조심해야 하는 걸 아는데, 아직 나는 31살-_-이니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허벅지에 근육이 조금?? 생긴 것 같아 기분은 좋은데 무릎이 아파 못 뛰고 나면 미량의 근육이 사라진 것 같아 슬플 때가 많다. 무릎아, 나 죽기 전까지만 버텨주삼.
오늘은 조깅을 시작한 지 처음으로 아침에 일어나 뛰어봤다. 물론, 과학기자로서-_- 역전층 현상으로 인해 오전에 도심을 뛰는 짓은 매연을 비롯한 각종 오염물질을 쳐 마시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런데 느낌이 새롭다. 일찍 일어나 뛰고 결혼식 가서 사람들을 만나니, 뭔가 이상하게,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부지런하게 운동도 하고 온 사람이야-_- 라는 마인드가 생기면서 뭐랄까. 자신감이 생기는 듯 한 이상한 느낌?-_- 사람이 원천적으로 갖고 있는 ‘깔때기’ 마인드가 아닌가! 물론 사람들한테 자랑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아, 페이스북 얘기도 해야겠다. Run keeper를 처음 사용할 때 회원가입이 귀찮아 페이스북 아이디로 가입을 했다. 그랬더니 페이스북에 연동이 된다. 가끔 안 될 때도 있는데 몇 번의 업데이트가 이뤄진 뒤에는 열라 빨리 페북에 올라간다. 뛰는 횟수가 많아지고 페북에 자주 글을 올리지 않다보니 가끔 어떤 분들은 이런 말을 한다. “자랑하고 싶은게냐” 솔직히 말하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고, 스스로 조깅을 끝내지 않기 위한 연약한 의지를 다잡기 위한 방편이다. 몇 번 뛰고 안 뛰면 혹시라도, 타임라인에 뜨다가 더 이상 뜨지 않으면 혹시라도, 그런 사람 많이 없겠지만 “요 새끼는 몇 번 뛰더니 안 뛰네? 연약한 새퀴”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르고, 남들의 시선을 신경 많이 쓰는 철없고 우유부단한 나로서는 이런 작용은 연약한 의지를 강화시키는 좋은 채찍질이 된다. 그래서, 앞으로도 페북에 연동시켜 나의 조깅을 알리는 일은 계속 된다. 얼씨구, 지금 생각의 흐름 기법-_-으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데(신촌역 파스구치 2층) 1층으로 2009년도에 소개팅을 했던 여자가 지나갔다.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내 또 다른 친구와 굉장히 많이 닮았기 때문-_- 외로워 보이는 것을 보니 아직 솔로이신가봐요.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이 명당자리를 빼앗기기 싫어서 못가겠다. 그렇다고 책가방을 비롯한 내 짐을 놓고 화장실을 갔다 오는 것은 소심한 나로서는 안 될 일이고. 혁대 조금씩 풀러가며 견디다가 나가련다. 이렇게 불토가 지나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