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우리의 문제는 그거야. 뭐든 꼬고 또 꽈서 분석하려 든다는 점. 상대는 그게 아니거든"
자동차 분해조립을 하면서 알게 된 학교 선배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람의 심리나 그 상태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상대방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 언제나 '왜 그럴까' 라는 물음을 멈추지 않는 나로서는 확실치는 않지만, 아니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겠지만 고2때 부터 이어온 이과 공부의 틀에 어쩌면 나의 사고가 갖혀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상대방은 아무 생각없이 건낸 말 한마디, 행한 행동 하나일 뿐인데 이유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것은 참으로 성가신 일일게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 이것도 나의 업보인가. 아니면 그렇게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든 세상 탓일까.
감기에 걸렸다. 다행히 오뉴월이 아니니 '개' 소리는 듣지 않겠다만 8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에 덜커덕 걸린 코감기는 어느덧 기수를 돌리고 자리를 박차 '비염' 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합쳐 발발한 목의 따가움. 간만에 따가운 목을 크크 거리며 목소리를 가다듬다 보니 예전 생각이 스륵 밀려온다. 그리운 단어 '제산제'를 떠올리며 약국에서 '아메딘' 과 '겔마' 라는 약을 사먹었다. 방학동안의 불규칙한 식생활과 폭식, 인스턴트로 물든 메뉴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의 위산을 펌프질했고 결국 약하디 약한 나의 목은 위산에 젖어 고약한 염증을 일으킨 듯 보인다.
엄마 몰래 하던 과외, 걸리고 말았다. 딱히 어떠한 이유가 있다기 보다는 만날 바쁘다고 징징 거리던 나였기에 과외를 한다고 말하기가 뭐했고 일부러 학교에 전화해 나의 번호를 물어 전화를 걸어 온 과외 학생 아버지의 삼고초려(?)를 더 이상 거절할 수 없기도 했다. 과외를 한다고 하면 또 부모님은 '왜, 돈이 없니?' 라며 바쁜데 용돈 줄테니 과외 하지 마라 고 하실게 뻔하고 괜시리 나이값 하겠다며 집에 손벌리긴 싫은 못난 아들은 또 그것이 싫었다. 그나저나, 역시 귀신은 속일 수 있어도 어머니는 못 속인다. 어찌 아셨을까.
YEHS 신입회원이 들어왔다. 매 달 나가고 싶지만 여건 상 가끔 CEO 포럼에 나가곤 하는데 그 때 마다 새로 들어온 신입회원들의 나이가 점점 어려진다. 오늘은 86, 87, 88이 대세. 간단히 맥주와 통닭을 먹는 자리에서 몸을 생각하며 물 한 잔으로 버틴 내 자신이 새삼 뿌듯하다. 그래서인지, 목의 통증이 조금은 가라앉은 것 같기도. YEHS에 참여하시면 더욱 많은 것을 얻어가실 수 있을 거에요, 라는 혀발림으로 신입회원들의 참여를 유도하려 애썼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YEHS의 상급기관은 대한민국을 이끌었다는 노년층의 '한국공학한림원'. 그 성격을 어찌 버릴 수 있으리요. 윤회장님께서 친히 자비를 털어서 YEHS 회원들에게 꼭 읽혀야 한다고 보내주신 책을 봤더니만,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 대한민국 이야기 -이영훈-' 이라는 책이었다. 지은이를 보자마자, 그리고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한숨만 나왔다. 하긴, '이 모임에는 xxx같은 애들은 없겠지?' 라는 말을 하셨던 분이니. 그나저나, 계속 이런식으로 나가다간 YEHS 회원들의 사상이 너무도 한쪽으로 치우칠 것 같다. 세미나때, 다시금 강하게, 밀어 붙여봐야겠다.
현대자동차 8월 마지막 교육이 수요일까지 이어진다. 무엇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이 고역이다. 자동차 분해조립. 만날 강의실에 앉아 졸기만 하다가 직접 스패너를 들고 자동차를 산산조각 내보니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자동차 안에 누워 드라이버를 돌려가며 하나하나 분해해 나갔다. 그랜저TG가 차체만 남아가는 과정. 볼만하다. 아쉬운 점은, 내년 8월에 졸업하고 회사로 오라는 점. 말도 안되는 사유를 길게 늘여가며 저는 2009년 2월에 졸업을 해야만 합니다, 라고 구구절절 장황한 글을 써서 보냈다만 아직도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저는 졸업까지 1년 남은 건가요. 아, 저는 싫어요. 못해본 것이 너무도 많아요.
수강신청이 개판이 되버렸다. 들으려 했던 과목들은 모두 마감이 되어 있어 대기상태였던 나는 짤려버렸고 듣고 싶었던 두 과목은 시간표가 겹쳐 듣지도 못할 뿐더러 재수강을 하려 했던 일반화학 역시 수강인원이 다 찼단다. 어찌어찌 15학점을 채우고 시간표를 바라보니 띄엄띄엄, 난리 부르스다. 학년이 올라가는대도, 왜 시간표는 이리도 개판일까. 교양이고 뭐고, 이번 학기 15학점 전공에 3학점 화학. 화학은 3차, 전공 1과목은 4차 시험이라니. 난리났네. 경사났네.
삶의 한 줄 한 줄을 이렇게 글로 옮겨보면 참으로 재미나다. 아무일도 아니지만 시트콤을 보는 듯한,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잠시 즐거운 혹은 불안한 상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