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장혜진

방바닥 2006. 9. 6. 16:16

고등학교 1학년 당시 김동률이라는 가수를 굉장히 좋아했다. 깔리는 목소리와 심하게 요동치는 바이브레이션에 껌벅 죽었기도 했었지만 꼴에 '난 너희들이 좋아하는 그런 가수들은 싫어해. 난 뮤지션의 팬이야' 라는 같잖은 생각도 어느정도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 역시 어린아이 였던지라 이성 가수들에게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때는 룰라(의 김지현)의 왕팬이었고 고등학교에 들어서는 박지윤의 철없는 팬이 되어 교과서의 표지를 그녀의 얼굴로 싸고 방 한 쪽 구석에 그녀의 사진을 걸어 놓는 일도 서슴치 않았었다. 씨디도 나름 열심히 모으긴 했다만 김지현의 외도(?)에 실망해 그녀를 버렸고 박지윤의 남자변신에 쇼킹해 조용히 유지하던 홀로 팬클럽을 탈퇴하고 말았다.

핸드폰을 변기에 빠트리고 슬립을 자처한 핸드폰을 구입하고 나니 엠피쓰리 기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은 어떤 음악이 좋으려나' 이러저러한 사이트의 가요순위를 찾아가며 노래를 듣던 중 내 귀를 움찔거리게 하는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그 남자 그 여자' 였다. 바이브의 가녀린 목소리에 흉내낼 수 없는 노래실력도 출중했지만 그 보다 그 뒤에 흘러나오는, 장혜진의 목소리에 나는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이름은 알고 있는 가수 였다만 7집까지 낸 중견가수(?)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대충 그녀의 이름이 들어간 몇 가지 곡을 다운 받아 간만에 이어폰을 꽂은 채 음악감상이라는 것을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천의 목소리를 가진 것 마냥 흔들거렸다. 슬픈 노랫말이 들려올 때는, 언제나 그녀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날 흔들었고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는 홍조빛을 띤 그녀의 수줍은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 역시 매 노래마다 다르다. 그녀의 실제 얼굴을 보게 되면 이 환상이 깨어질 까봐 아직 검색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곧 하나, 둘 모으게 될 그녀의 앨범을 사게 될 전까지는, 이런 막연한 상상이 깨어지길 바라지 않는다.

한 곡, 두 곡, 음악 감상하는 재미가 이렇게 쏠쏠한 것인지 방년(?) 25이 되어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