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햇빛을 본지 일주일이 지났다. 12시 전에 퇴근한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주 금요일 밤 지하철 막차를 탔다. 그 외에는 모두 택시다.
이달 11일, 충남대로 출장을 갔다가 산들거리는 캠퍼스 분위기에 취해 '눌러 앉을까'를 잠깐 고민했다-_- 아, 대학이란, 젊음이란 이런거야! 를 속으로 연신 외쳤다.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농구하는 친구들 사이로 삼삼오오 손을 잡고 재잘거리며 지나가는 어린 여후배들(응?). 농구 코트가 꽤 컸는데 꼭 그 앞에 있는 벤치에 다리 꼬고 앉아서 운동하고 있는 남학생들에게 예상외의 파워를 주는 여학생들이 '꼭' 있다. 남학생들은 더 오버하고 그러다 '꼭' 다친다.
집으로 바로 퇴근하던 중 '지진' 소식을 들었다. 팀장님께 간단한 지시를 받았다. 규모가 컸지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번질 줄 몰랐다. 토요일 오전과 오후에 시간을 내서 할 일을 대충 마치고 쉴까, 하는데 원전이 터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른 지시가 떨어졌다. 일요일 출근은 예상했다. 낮잠을 좀 자고 일어나 일을 하다가 석웅이의 부름으로 간단히 소주 한 잔했다. 출근을 해야했기에 오래 마시지도 못했다. 아쉬움과 함께 귀가, 그리고 눈을 감았다가 뜨니 일주일이 지나있었다.
지난 주 금요일 12시 반에 퇴근하면서 서울에 있을법한 친구들 12명에게 전화를 했다. 도저히 그냥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제기랄. 고려대 화공과 절정 꽃미남 전정환씨는 전화도 안받는다. 그 뒤로 문자도 씹고 있다. 망할놈. 다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애인이랑 친구들이랑. 혹은 전화를 받지 않거나-_-
빅뱅이론 시즌1을 모두 다 보겠다는 생각으로 노트북을 켜고 누웠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자면서 받은 전자파 때문인지 개운치가 않다. 아침에 눈을 떴다가 또 잠들었다. 눈을 뜨도 껌벅거리니 오후 4시. 니미럴. 병원을 들렀다 학교로 갔다. 제길슨. 다음날 사트시험 있다고 술들을 안쳐먹겠단다. 물만 마시는 친구들 옆에 앉아 혼자 소맥을 말아 쳐먹다가 집으로 왔다. 빅뱅이론을 보다가 또 잠이 들었다. 꿈 속에서 일본 원전을 헤엄치며 다녔다. 그리고 깼다. 8시. 제길슨 알람도 못듣고 자고 있었다. 부랴부랴 일어나 회사 출근. 또 정신없이 하루가 갔다. 아직 일을 잘 못하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기 보다는 '짐'이 되는 상황에서 이런 일을 겪으니 분통이 터질때도 많다. 조금만 더 빨빨거리며 일을 할 수 있다면 스스로도 뿌듯할텐데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고 신문이 나온 뒤 다음날 기사 '꺼리'를 위해 회의실에 모이는 밤 12시, 그 자리가 참 고역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신문에 글이 실리는 것은 괜시리 기분이 좋다. 내가 많이 쓴 것이 아니지만 바이라인(기사 밑에 나가는 이름과 이메일)이 나갈 때는 좀 민망하기도 하고 내가 많이 쓴 기사지만 내 바이라인이 안나갈 때는 새침해지곤(?)한다. 교과부 장관이 하는 말 들으려고 고개를 들이 밀며 옆에 서 있다가 TV에도 출현했고-_- 덕분에 연락이 끊겼던 지인에게 "너 TV에 나오더라"라는 말과 함께 메시지가 오기도 했다. 인터넷 상에 뜬 사진에(교과부 제공) 어리버리한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등장해 업무에 치여있는 회사 내 직원들에게 잔잔한(!) 웃음을 제공한 것은 바쁜 와중에 거의 찾을 수 없는 재밋거리(?) 중 하나였다.
사과부터 해야겠다. 회사일에 치이는 친구들이 "시간 없어서" "정신이 없어서" 혹은 "여유가 없어서 잊었어" "회사일로 피곤해서" 라는 말을 할 때 믿지 않았다. '핑계'라고 생각했다. '의지'만 있다면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미안. 베리베리 미안하다. 그 상황을 직접 겪고 나니 정말 미안하다.
일요일 아침 광화문 맥도널드에 갔다가 사회부에서 일하고 있는 학교 후배를 만났다. 나이는 나보다 많지만. 매일 11시 퇴근에 '쩔어'있는 모습을 보니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앞섰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고작 1주일 하고는 힘들다 힘들다 우울한 소리만 쳐 해대고 있으니.
틈날 때 마다 쓴 글이 벌써 이렇게 길어졌다. 여전히 응석(!)부리고 싶고 나 힘드니깐 도와줘요(!?)라고 앙탈(!)부리고픈 마음이 강한가보다. 내색도 하지 않으면서 매일 엄청난 기사를 쏟아내는 선배들에 비하면 하는 일은 참으로 적은데 말이다.
이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지난 1주일,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알 수 없는 기간동안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것 같다. 일 하는 것은 그렇다치고 내 상황, 내 생각, 앞으로의 미래 등.
배가 나온다. 청계천을 따라 1시간씩 걸으며 퇴근을 못하니, 뭔가 머릿속에 당을 보충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미친듯이 쳐 먹어대니 어쩔 수 없는 결과다. 머리가 또 저려온다. 회의 하러 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매일매일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어찌저찌 하루하루가 간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