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피어나기
성유진님의 그림을 (내게 보여주신 그림)보며,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그것은 나의 성격일 수도 있고 나의 버릇일 수도 있으며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머릿속에서 무수히 피어나오는 불안한 생각들. 성유진님의 말마따나 단지 나만의 부정적인 생각이라 여겼던 것들은 부정적인 행동을 낳고 바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내게로 되돌아 온다.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 이라는 것은 시쳇말로 외모를 일컫는 '간지남' 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철철 넘쳐나는 금전적인 자신을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즉 나의 생각과 나의 개똥철학과 똥개철학에 대한 당당함이었는데 사람과 사람을 겪으면서 많이 희석되는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 그렇다고 한 가지 생각을 외곬수처럼 밀고 나가고픈 고집스러운 면이 강한것은 또 아니다. 최대한 유연하게 대처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며 남을 신뢰로 대하면 신뢰로 보답받는다, 라는 생각들. 그런 것을 통해 나는 어디가도 나 자신을 당당하게, 그리고 멋지게 프레젠테이션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홀로 피어나는 부정적 생각들은 점점 커지는 듯 하다.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전개해 보고 그것보다 나은 현실이 다가왔다는 것에 안도하고픈 마음 때문인지, 그리고 그 속에서 얻는 위안이 사뭇 크기 때문인지, 나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래 원씨야, 너는 그것보단 나을거야, 그리고 더 나은 미래가 널 기다리고 있을거야. 라는 최면을 걸면서 말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소심한 성격때문에? 요철없는 평탄하고 물렁물렁한 삶에 대한 동경 때문에? 아직까지도 답은 확실치 않다. 때문에, 나는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최악의 부정적 상황을 머릿속에 상상하며 그것보다 나은 현실에 위로를 받는다.
아마도, 다음주 내내 나의 삶은 무미건조하며 과도관 내에 쳐박혀 책과 씨름하는 한 주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것도 역시, 최악의 부정적 상황에 대한 가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