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방바닥
2008. 5. 18. 02:53
공수대원들은 서너 명이 1개조가 되어 학생처럼 보이는 청년들을 무조건 쫓아가서 곤봉으로 머리를 때리고 공을 차듯이 가슴과 배를 내질렀다. 시위 군중은 불과 십여 분도 못되어 산산이 흩어져버렸다. 공수대원들은 골목마다 뛰어다니면서 주변에 숨어 있는 청년들을 두들겨 패고 나서 손목을 뒤로하여 포승으로 묶고는 차에 던져올렸다. 차 위에서는 무전병이 기다리고 있다가 체포되어 올라온 즉시 발가벗기고 굴비 엮듯 엎드리게 하고는 계속 난타했다. 거리에는 일시에 살기가 맴돌았고 골목마다 비명과 흐느낌이 요란했다. 어떤 경우는 터미널 뒤편의 막다른 골목까지 달아난 학생이 드디어 잡히게 되자 자지러지게 무릎을 꿇으며 살려 달라고 연신 빌었다. 대문에 나와 내려다보던 할아버지가 너무도 애처로워 몸으로 가리면서 봐달라고 사정하자 공수대원은 "비켜 이 새끼" 하면서 할아버지를 곤봉으로 내리쳤다. 할아버지는 피를 뒤집어쓰며 고꾸라졌고 쫓겼던 학생은 돌을 집어 들었으나 공수대원은 가차없이 곤봉으로 후려친 뒤에 대검으로 등을 쑤시고는 다리를 잡아 질질 끌고 길거리로 나갔다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공수부대 병사들은 마음껏 모든 가능한 폭력을 행사하였다. 첫날부터 대검을 사용하고, 지나친 폭력에 항의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대며 무지막지하게 구타하고 여성들에게 폭행하고 옷을 찢고 심지어 젖가슴을 대검으로 난자하였다.
-오월의 사회과학, 최정운
공수 놈들이 여고생을 붙납고 대검으로 교복 상의를 찢으면서 희롱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60살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아이고, 내 새끼를 왜들 이러요?' 하면서 만류하자 공수놈들은 '이 씨팔 년은 뭐냐? 너도 죽고 싶어?' 하면서 군화발로 할머니의 배와 다리를 걷어차 할머니가 쓰러지자 다리와 얼굴을 군화발로 뭉개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여학생의 교복 상의를 대검으로 찢고 여학생의 유방을 칼로 그어 버렸다. 여학생의 가슴에서는 선혈이 가슴 아래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박남선
붙잡혀온 시민들을 대상으로 1)워커발로 얼굴 문질러버리기 2)눈동자를 움직이면 담뱃불로 얼굴이나 눈알을 지지는 재털이 만들기 3)발가락을 대검날로 찍는 닭발 요리 4)사람이 가득찬 트럭속에 최루탄 분말 뿌리기 5)두 사람을 마주 보게 하고 몽둥이로 가슴 때리게 하기 6)며칠째 물한모금 못 먹어 탈진한 사람에게 자기 오줌 싸서 먹이기 7)화장실까지 포복해서 혀 끝에 똥 묻혀오게 하기 8)송곳으로 맨살 후벼파기 9)대검으로 맨살 포 뜨기 10)손톱 밑으로 송곳 밀어넣기
한국현대사사료 연구소편,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
사상 유례없는 이 처절한 피의 광란에 2만여 병의 병력을 동원했던 신군부는 "주도면밀한 계획과 대담한 실시로 시민의 희생없이 완수한 작전으로서 사상 유례없는 성공적인 작전이었다" 는 평가를 내리고 공수특전부대 사령관 정호용등 살이마 66명에게 훈장을 수여하였다. 이들에겐 그야말로 화려한 휴가였던 셈이다.
광주시민들은 동료시민들이 공수부대의 대검과 총탄에 무참히 쓰러져갈 때에 "전두환을 갈갈이 찢어 죽이자"고 외쳤지만, 내내 그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좌절 속에서 처절함에 익숙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좌절 속에서 체념을 배운" 호남인들이 아니라면 결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무력감에 빠진 호남인들은 오직 말 없이 김대중에 대한 지지를 통해 그 한을 풀고자 하였지만, 인정머리 없고 광주학살에 대해 눈물 한방울 흘린 적이 없는 일부 한국인들은 그들의 그런 평화적인 선택에 대해서조차 경멸을 보내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일부 정신 나간 한국인들은 전두환 일당에게 뜨거운 지지를 보내는 것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는 이후의 역사가 말해줄 것이다.
광주시민들은 동료시민들이 공수부대의 대검과 총탄에 무참히 쓰러져갈 때에 "전두환을 갈갈이 찢어 죽이자"고 외쳤지만, 내내 그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좌절 속에서 처절함에 익숙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좌절 속에서 체념을 배운" 호남인들이 아니라면 결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무력감에 빠진 호남인들은 오직 말 없이 김대중에 대한 지지를 통해 그 한을 풀고자 하였지만, 인정머리 없고 광주학살에 대해 눈물 한방울 흘린 적이 없는 일부 한국인들은 그들의 그런 평화적인 선택에 대해서조차 경멸을 보내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일부 정신 나간 한국인들은 전두환 일당에게 뜨거운 지지를 보내는 것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는 이후의 역사가 말해줄 것이다.
-한국현대사산책 1980년대편 1권 ,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80년대편 1권 에서 발췌
강풀의 5.18을 되돌아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