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때 부터 나의 영어 실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맨투맨, 성문을 모두 독파했고 맨투맨의 경우는 문법의 예문까지 외울 정도였다. 맨투맨 관련 정리 노트만 5,6권 정도였고 중학교를 졸업하기도 이전에 수능에 나왔던 모든 단어를 외웠던 나는, 독해 및 어휘력에서는 어느 누구에도 지지않을 자신감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교 1학년이 되어, 교양영어와 실용영어를 들었던 나는 교양영어에서는 빠른 독해와 누가 물어봐도 다 답할 정도의 단어 실력을 갖추었던 반면에, 실용영어 시간, 미국 원어민 교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연신 "야 뭐라고 한거야?" 를 연발, 한국 교육이 낳은 부작용, 책상영어의 결정판을 보여주면서 아이들 사이에서 "책상영어" 라는 별명을 하사 받았다.
다행히 책상영어의 도움으로 토익은 그닥 애쓰지 않고도 어느정도 점수를 올리긴 했다만 문제는 바로 '실용영어'였다. 내년 8월 입사를 앞두고 관련 부서의 차장님이 "외국 사람과 미팅 많이 한다. 영어 공부하고 와라" 라는 소리에 쫄아 이번 겨울, 영어회화학원을 신청했다. 신청을 했더니만 일단 테스트를 보고 반을 정해야 한다 해서 무얼 하나 했더니, 외국인에게 전화가 왔다-_-.
"Hello~ 솰라솰라 wonc?"
".................."
"Hello~~솰라솰라 wonc?"
"................"
"Hello~ 솰"
"뚝"
뭐냐 이건. 머리가 왜 하얗게 물든거냐-_-
다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이래저래, 예스, 팔던미? 익스큐즈미를 연발했다. 지옥같은 10분이 지난 후에 학원을 찾았다. 상담해주시는 분이 보여준 성적표는 아주 이뻤다. 밑에 달린 코멘트를 보자.
어순을 굉장히 혼돈스러워 합니다. 한국어와 영어의 어순이 반대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문장을 구성해야 합니다.
이 정도일 줄이야. 특히나, 어휘력이 부족하다는 부분에서 나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과외를 하면서 과외하는 어린 것들이 사전을 펼쳐 나온 단어를 아무거나 물어봐도 70%이상 맞추던 어휘력이었는데, 말하기에서는 개뿔, 아무 소용없었다.
다행히 상담해주시는 분이 "다 이래요" 하시며 중급코스로 넣어 주셨다. 열심히만 하면 앞으로 6개월만에 완벽 프리토크 코스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격려와 함께. 비싼 학원비를 등록하고 나니 불안감 보다는 이제껏 내가 쌓아온 영어실력에 대한 회의가 밀려들었다. 아무리 어려운 문법 문제도 턱하니 맞추곤 했는데, 단어를 숙어로 바꾸기, 비슷한 단어 찾기 문제는 문맥 해석 없이 바로바로 답을 찍어내곤 했는데, 간단한 어휘만 가지고 있는 학생이라니....
한국교육, 바뀌어야 한다. 책상영어의 실패 본보기가, 바로 여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