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

고연전

방바닥 2007. 10. 9. 00:59
 오로지 '고연전' 만을 향해 달려온 나의 수험생 생활은 재수의 길을 거쳐 2002년, 드디어 그렇게 원하던 고려대에 입학함으로써 끝을 지었다. 초등학교때 부터 '연고전' 이 아닌, '고연전' 이라는 단어만을 입에 줄줄 달아왔던 나로서는 현주엽과 전희철, 그리고 그들 뒤로 보이는 빨간 복장 학생들의 어깨동무에 전율을 느끼며 "내 꼭 저 곳에 있으리라" 는 다짐으로 살아왔었기에 '고연전' 을 맞는 나의 각오는 언제나 남달랐다.
 첫 해 맞는 고연전, 3박 4일을 밤새고 24시간을 죽어있었을 만큼 나의 각오는 대단했고 그 이후로 6년 연속, 잠실벌에서 교가를 부르며 지하철을 타는 나름의 기록을 세우고 이제는 졸업을 앞두고 있다. 내년부터는, 교우회의 일원으로서 어색한 빨간 모자로 간부티를 내고 참석을 하고 싶고 그 이후에는 나의 아내와 그리고 자식들과 함께 소풍오는 마음으로 고연전을 맞이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고연전을 즐기면서, 그것도 2년동안 '과대' 라는 직함을 달고 참석을 했을 때 절대 불가했던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지하철 내에서의 응원과 방만한 행동, 그리고 기차놀이를 하기 전, 가게에 들어가 미리 양해를 구하고 오케이 싸인이 떨어진 곳에서만 소리통과 응원을 하는 것이다. 고연전이 끝나고 '우르르' 하는 집단행동에 취한 고연대생들의 행동은 정말 가관이다. 몇 해 전에는 지하철 안에서 말뚝박기를 한 고대생들이 언론을 타는 바람에 심하게 쪽팔린 적이 있었고 퇴근 시간이라 가뜩이나 꽉찬 지하철 안에서 응원을 하는 개념상실 고연대생들도 심심찮게 보아왔다(2002년도에는 나의 친구가 이들을 격퇴시켰다). 주변 사람들의 찡그린 표정은 아랑곳하지 않는 그들의 행동은 과연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기차놀이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먼저 가게 주인의 양해를 구한 뒤 '들어오라' 는 허락을 받고 응원을 하며 술을 요구하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임에도 무조건 쳐들어가 '달라달라'를 외치고 없다고 하면 '망해라' 혹은 '실망이다' 라는 구호로 깽판을 치는 무개념 인간들이 판을 친다고 한다. 무엇이 한 나라의 대학생이라는, 그것도 양대사학이라는 나름 똑똑한 그들을 이렇게 무식하게 만들어 버렸을까.
  고대생과 연대생이니까, 라는 특권의식이 뭉친 집합체가 바로 고연전이 아닐까 싶다. 그 날 하루는 지하철에서 뒹굴러도, 길거리를 쓰레기통으로 만들어도 우리는 대한민국의 양대사학인 '고대와 연대' 이기에 가능하다, 라는 이 지랄같은 의식은 학내에서도 쉽게 엿볼 수 있는데 한 예로 얼마전 고대신문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불확실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취업 후 '우리는 잘 될것이다' 라는 막연한 생각을 많은 학생들이 하고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특권의식이라는 것, 이것이 학창시절 남들 놀 때 열심히 공부한 결과이기에 누려도 좋다, 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로 그 특권의식, 그리고 그곳에서 나오는 학력사회라는 것이 대한민국을 이따구로 만들었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신입생들에게 남기는 글에서 말했듯이 이 사회는 '고려대학교' 라는 이름에 심한 의미를 부여하고 많은 것을 내어준다. 과연 그것이 옳은 것인가, 라는 것은 개개인의 판단에 맡길 일이겠지만 사회속에서 나름의 기득권을 차지한 우리들이 그것을 버리고 사회 속으로 다가가는 것이, 나는 더욱 올바른 일이라 판단한다. 말이 꼬인다.
 
 여튼, 앞으로는 고연전을 단순히 양교의 화합과 발전을 위한 순수한 축제로서 즐겼으면 한다. 빨간옷과 파란옷에 쓰여있는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라는 이름을 남에게 보임으로써 우쭐함을 갖고 거리를 활보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려대 가***과의 한 남학생으로 기억하는데, 사람 많은 지하철 한 복판에 다리 쭉펴고 앉는거 아니다. 내가 한소리 하려다가 옆에 후배가 말려서 가만 있었다만, 내가 너 보면서 쪽팔려서 지하철에 있던 분들게 대신 사과하고 싶었다. 그건 멋있는게 아니란다 꼬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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