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씨

황가네 꼼장어

방바닥 2008. 7. 7. 02:43

 소주를 못마시는 사람도 이것 한 마리를 입속에 넣으면 미친듯이 소주를 털어넣고 싶은, 소주 한 잔에 한 점씩 먹다 보면 어느새 늘어나버린 소주병에 깜짝 놀라고 마는, 비록 비싸지만 생각만 해도 좋은 사람들과의 주황색 바랜 빛깔이 떠오르게 만드는 안주,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꼼장어다.
 처음 꼼장어를 접한 것은 아마도 2004년도 였던 것 같다. 역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황가네 꼼장어" 라는 집이 생겼는데 오픈기념으로 소주 한 병, 음료 한 병 무료, 라는 간판을 보고 친구들과 무작정 들어갔었다. 그 때 처음 맛 본 꼼장어맛. 짙은 숯에 모자이크 모양의 석쇠를 올려 놓고 그 위에 살짝 양념이 된 붉은 꼼장어를 올려 놓으면 빨갛게 힘을 내는 숯과 살살 익어가며 단단해지는 듯한 꼼장어의 조화는 삼합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안에서 슬슬 밖으로 머리를 드러내는 힘줄과 같이 입속으로 넣어 달라며 기품있게 누워있는 부추, 그리고 꼼장어와 함께 달달하고 부드럽게 식도를 타는 소주까지. 이러니 원씨의 꼼장어 사랑은 끝이 없다.
 때문에 다음날 중요한 약속이 있거나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일이 있을 경우 전날 밤 꼼장어와 함께 하는 술자리는 가급적으로 피하는 것이 좋다. 꼼장어와 함께 1인분, 1인분 먹다가 같은 과 후배와 동기들을 만나 결국 10만원어치 꼼장어를 먹은 적도 있었다. 물론 다음날 아침 1교시는 날아가버렸고 저녁까지 입안에서 맴도는 꼼장어 양념과 술내음은 주변인들에게 상당한 입내를 날린적이 있었다.
 원씨를 꼼장어의 세계로 이끈 황가네 꼼장어가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안산의 '로데오 거리'(압구정이 아니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황가네 꼼장어는 장사가 잘 안되었는지 설렁탕 집으로 바뀌어 있었고 환히 들여다 보이는 내부 역시 설렁탕 국물의 맑은빛처럼 환한 불이 켜져 있었다.
 "사장님, 꼼장어 맛있어요?" 라는 질문에 "솔직히 저는 맛있는거 모르겠던데" 라는 말로 나와 친구들을 당황하게 했던 유재석 닮은 사장님은 지금 어디 계실까. 나를 꼼장어의 맛에 빠지게 해서 나간 나의 술값과(꼼장어는 값이 조금 나가기에 먼저 먹자고 말하기 힘들다. 아니, 그것보다는 소주 한 잔에 다섯점씩 집어 먹는 본인 때문에 내가 쏠게, 라는 말 없이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은 약간 무리다) 시간, 그리고 다음날까지 이어진 숙취에 대한 책임은 지고 사라지셨어야 했는데. 무책임하게 이렇게 가게를 넘기시고 가시면 이제 안산에서 꼼장어는 어디서 먹으라고. 사장님, 책임이 뭐 별거 있나요. 꼼장어 한 마리면 되는데 말이에요. 후덥지근한 밤, 문득 꼼장어가 확, 땡긴다. 입사전에 맨발의 청춘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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