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닮은 -어머니3-

방바닥 2007. 1. 24. 15:03

 나와 어머니는 많이 닮았다. 다소 작은신 아버지에 비해서 나의 키가 그나마 180을 유지하는 것도 167의 신장을 자랑하는 어머니 덕분이며 남들보다 허리가 길어 어렸을 적 부터 허리가 좋지 않은 것 역시 그렇고 펑퍼짐한 엉덩이 덕분에 바지를 입으면 뒤가 톡 하고 튀어나올것만 같은 것도 닮았다. 백옥같은 피부가 아니기에, 나 역시 넓은 모공과 여드름의 흔적들이 얼굴의 구점구할을 지배하며 아무리 많이 드셔도 살이 찌지 않으시는 아버지에 비해 먹으면 곧장 살로 가는 용수철 뱃살과 체중 역시, 어머니를 닮았다.
 왜 한 번 말 하면 알아 듣지를 못하니, 조금만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거잖니, 그렇게 누워 있을 바에는 차라리 빨래라도 개면서 누워 있겠다, 이게 힘드니?, 조금만 움직이면, 조금만 부지런하면 할 수 있는 일이잖니, 5분 더 잔다고 뭐가 나아지니?, 니 인생 니가 살지만. 뻔한 잔소리 같지만 내가 평소에 갖고 있는 생각들과 어머니가 내게 건내는 말은 거의 같다. 남들에게 쉽게 '서운함' 을 느끼는 것 역시, 똑 닮았다.
 나라면 이렇게 할텐데, 왜 남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을 이해해주지 못할까, 라는 어머니의 생각은 평소 쉽게 친구들에게 실망감을 자주 던지곤 하는 내 모습과 오버랩 된다. 단지 대상이, 어머니는 가족안으로 많이 기울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일 뿐.
 때문에 어머니가 느꼈을 서운한 감정이 이해가 간다. 내 경우야 가족이 아닌 주변인들에 국한된 서운함이기에 '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 뭐" 라는 생각으로 많이 유연해 지긴 했지만 어머니가 느끼는 서운함은 피붙이 가족 사이에서 나타나는 감정이기에 그 밴드갭이 꽤 넓다.
 
 "왜 밥 차려 놓고 먹으라고 하면, 엄마는 식사 안하셨어요? 라고 묻질 않니. 그거 되게 서운해.."
 "왜 내 생각을 못해주니. 그냥 이렇게 휘둘러 놓고 다니면 쫒아다니면서 치우는 나는 우리집에서 가정부니?"

 어머니가 갱년기 더위에 시달리면서, 극도의 외로움을 타기 시작했을 때는 아버지는 매일 늦으시고 누나는 실험실 덕에 바쁘고 나는 공익 퇴근하면 여자친구를 만나거나 과외를 하고 혹은 공부를 한답시고 방 밖으로 나오지 않을 때 였다. 어머니는 철저히 고립되었으며 어느 누구에게 하소연을 하지 못하고 그 고독함과 외로움을 입술로 삮이셨다. 평소 즐겨하시던 운동도 몸이 안좋아지셔서 끊은 상태였기에 어머니의 서러움을 풀 대상은, 그녀의 주위에 존재하지 않았다.
 뒤늦게 나를 붙잡고 앉아 눈물을 흘리시며 토해낸 핏덩어리같은 응어리는 나몰라라했던 가족에 대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부터 나는 많이는 아니지만 종종 어머니와 영화를 보거나 단 둘이 외식을 하러 가는 등, 가족으로서의 어머니의 존재를 되찾기 시작했다. 누나도 바쁜 시간을 쪼개서 어머니 생각을 했으며 평생 무뚝뚝하리라 생각했던 아버지가 어머니께 보인 큰 변화는 우리 가족도 이렇게 될 수 있구나, 라는 희망찬 모습을 볼 수 있었기에 의미있는 변화였다. 비록 그 전에 느꼈을 어머니의 서운함에 빗댄다면 미천한 진보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요즘 들어 어머니는 부쩍 자신의 서운함을 숨기는 눈치다. 그것이 가족에 대한 체념의 의미인지, 아니면 이제는 익숙해졌다는 의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아예 초월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감정적인 면에서 나와 여러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을 착안하면 그것은 수긍이다. 자신의 생각, 논리를 접고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옳다고 인정하는, 수긍일게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서운함이 가시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숨겼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틀렸다는 주장에는 고개를 꺾지 않는다. 그럴수록 그 자신은 더욱 더 자신만의 길을 선언한다. 마이웨이! 때문에 고독하기는 마찬가지다.
 요즈음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그리고 이제 졸업 준비와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나의 레이더에서 어머니를 배제시키고 있었다. 오죽하면 "나이 들어 용돈 받는 것이 쪽팔려!" 라는 생각으로 언제나 스스로 벌어썼던 내가 남은 2년간 과외불가 선언을 했을까. 집안 사정을 고려치 않은 선언(?) 이었지만 어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너 갈길 가라, 수긍하신걸까. 아니, 이쯤되면 초월하신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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