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수능은 몇 점 만점이니? -어머니1-

방바닥 2007. 1. 19. 12:57

 "얘, 수능은 몇 점 만점이니?"
고등학교때 1등을 하던 친구의 어머니가 오답노트 정리와 신문 사설 스크랩을 직접 한다는 말을 듣고 우리 어머니도 가만히 있기가 불안하셨는지 직접 가위를 드셨다. 집으로 배달되는 조선일보의 사설을 매일 오려 책상 위에 올려놓곤 하셨는데 나나 누나 모두 관심없기는 매한가지. 그래도 1년을 넘게 어머니는 매일 신문을 자르고 오리셨다. 그러면서 묻기가 미안하셨는지 조심스레, 수능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신다.

"어떤 과목을 시험 보는 거니?" "몇 점 만점이야?" "어느정도 맞아야 하니?"

귀찮은 마음에 "그냥 학교서 배우는 거 보는거지 뭐" 라며 쌀쌀맞게 대답하곤 했다. 어머니는 자주 잊곤 하셨는데 심지어 수능을 다시 보는 내게도 똑같은 질문을 하곤 했다. "얘, 수능이 몇 점 만점이니?"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들어갈 당시. 아직 비평준화 지역이었던 안산에서 어머니는 자신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야 두 쌍둥이가 공부를 할거라며 방송통신대학 가정학과를 등록하셨다. 어렸을 적 책 읽는 습관을 길러 주겠다며 직접 우리 옆에 앉아 책을 펼쳤다는 풍문을,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교수가 그냥 책을 읽네 읽어" 투덜거리시면서도 어머니는 꾸준히, 시험을 보러 다니셨고 또 강의를 듣고 책에 밑줄을 그으셨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어머니도 졸업을 하셨지만 아들내미는 모든 대학에 떨어져 재수의 길을 결심했고 딸내미는 모의고사보다 떨어진 수능 성적에 좌절하며 집 근처 대학을 선택했다.
 쌍둥이만을 바라보며 아픈 허리에 복대를 채우고 앉아 공부를 하셨던 어머니의 실망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비록 어머니의 성적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지만 두 자식과 함께 힘든 기간을 견뎌내려 했던 그 모정은, 다른 엄마들처럼 직접 문제집을 뜯고 채점을 해주는 능력이 없다며 아쉬워했던 그 모정은, 수능점수라는 치사랑을 얻지 못하고 내리사랑만을 소비한 채 그렇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다 어머니 탓이라며 모정은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다. 자신이 머리가 좋지 않기에, 자기 뱃속에서 나온 쌍둥이 역시 머리가 좋지 못하다는 말을 진지하게 하셨고 그에 대해 '미안하다' 는 말까지, 자식 앞에 조용히 내려놓곤 하셨다.
 체념이 빨랐기에 기대는 없었고 그랬기에 나의 재수 1년 기간은 어머니에게 의미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안보는게 편했다는 말, 내가 공부를 하던, 나가서 놀던, 눈에 보이지 않았기에 편했다는 어머니의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지만 딸내미의 장학금 소식에 미소를 보이시면서도 학적이 없는 아들내미, 믿었던 아들내미, 아직도 아들이 우세했던 집안의 아들내미였던 내게 걸었던 기대가 완전히 사그라들리는 없었다. 어디가 100원싸네, 200원 싸네 하며 찾아다니던 아줌마의 캐릭터가, 서울 지역 애들에게 둘러싸여 기죽지 말라며 5만원, 10만원을 선뜻 건내는 모정으로 바뀌었고 고시원 쪽방서 생활하다 일주일에 한 번 집에 가는 날이면 딸내미는 찬밥신세를 면키 어려웠다. 그렇게 다시 수능이 다가왔지만, 어머니는 또 물어보았다.
"사회탐구, 과학탐구는 어떤 걸 시험 보는 거니?"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처음으로 수도권 지역의 대학에, 그것도 옛날 어른들이 'SKY' 라며 떠받들었던 대학에 합격하자 어머니의 웃음은 그칠날이 없었다. 눈물을 흘리셨다. 합격 확인 전화를 받던 날 밤에 침대에 누워 눈물을 흘리셨고 내 모습을 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고 스피커폰으로 들려드린 ARS 합격자 메시지에 또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니 주위에 자신의 아들내미 보다 더 좋은 대학에 다니는 이가 없음에 자랑스러워 하셨고 매일 아들의 잘잘못을 잔소리로 지적하시면서도, 다른 집 애들은 안그런다는데 왜 너는 그러니, 라는 꾸중을 연신 하시면서도 나가서는 그칠 줄 모르는 아들 자랑에 친척들로부터 푼수 소리를 듣고 다녔다.
 
 어머니 동생의 아들이 첫 수능에 실패하고 두번째 수능에 기어이 모대학 수의예과에 합격했다. 축하 전화를 나누고 조카의 몇 점, 몇 점을 확인하면서 어머니는 여전히 내게 묻는다.

 "얘, 근데 수능이 몇 점 만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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