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새 삶

방바닥 2008. 9. 1. 20:03
 8월의 마지막 날에 거창한 액땜을 했다고 생각하며 피묻은 명세표를 지갑 속에 꾸겨 넣었다. 시간 되면 태워 버려야지, 라는 생각으로 옷 장에 쳐박혀 있는 이름모를 외투를 다시 한 번 살펴봤다. 음, 태워 버리기에는 약간 겁이 날 정도의 크기, 그냥 버려야겠다.
 담배를 끊기로 했다. 여자친구가 생기면, 결혼하면 끊어야지 라고 막연히 줄창 피워댔었는데 이를 계기로 다시 한 번 새로운 '삶' 이라는 것에 도전해 볼 기회를 얻은 것 같다(허나 솔직히 자신은 없다). 회사에서의 본업 교육도 시작이 되었고 워킹그룹 팀배치도 이루어졌으며 내 자리와 피씨도 생겨났다. 내일은 출입증, 사원증이 나온단다.
 술로 뒤집어진 속을 어르고 달래면서 이마에 생긴 시퍼런 멍 말고도 뒤통수 곳곳에 크고 작은 혹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뜩이나 안좋은 머리 얼마나 더 바보처럼 되려는지 나도 참 대책없다. 여튼, 이제는 잠도 일찍 자고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예전의 원씨(?)로 돌아가련다. 대학의 마지막 학기 미친듯이 놀았던 그 관성력이 아직도 힘을 잃지 않고 혀를 낼름 거리며 살아있는 듯 한데 이제는 주말마다 제 집 드나들 듯이 열고 제꼈던 술집의 문 대신 책 한 권 더 읽고 영어 스터디를 통해 모자란 어학 능력을 가꾸어 나가련다. 솔직히, 담배를 끊는 것은 지금 바로 자신 없지만 지난 삶에 대한 액땜은 확실히 한 셈이니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려는 구동력은 충분히 얻은 듯 하다.
 보란듯이, 잘 살아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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