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연말

방바닥 2006. 12. 23. 01:23
 모처럼 강남역에서 학원 친구들을 만났다. 내년이면 굴지의 모기업에 입사하는 친구와 유학길에 오를 친구. 간단한 맥주에 나초와 감자칩을 바삭바삭 씹어 먹으며 그간 풀지 못했던 회포를 풀었다. 누구는 모한다더라, 걔는 거기 붙었잖어, 둘이 헤어졌어?, 난 언제 졸업하지, 남자는 다 그래, 크리스마스날 모하냐, 낼 모레 애들 만나기로 했어, 차 막히는데 지금 시간에...
다들, 건강히, 아무 탈 없이, 잘 들 살고 있었다. 연말이면 확인하는 서로의 안부. 비로소 연말임을 느낀다.
버스의 줄은 끝이 없었다. 이거 안산가는 줄인가요? 도미노처럼 나 역시 뒷 사람에게 '네' 라는 대답을 해주며 주머니에 손을 꼬옥 넣었다. 코와 입으로 뿜어져 나오는 입김이 예전처럼 설익지 않았다. 완연한 연말이었다. 한 커플이 줄을 서 있다 갑자기 앞으로 뛰쳐 나갔다. 저 뒤에 보이는 버스를 먼저 타려 했었는지 문 앞에 서서 문을 열어 달라 조르지만 열어줄리 없다. 결국 문을 주먹으로 치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여자친구가 많이 추워했나 보다. 이어폰은 꽂았지만 노래는 틀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적저적 들으며 다시금 연말임을 느낀다. 걔도 한 번 봐야 하는데, 걔 누구랑 결혼했다며, 어떻하냐 나 이제 30대다......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맛을 느낄 때, 그리고 나 역시 그 중의 하나로서 별다른 차이 없이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연말임을 느낀다. 이제 또 다른 해에, 조금 더 나은 모습의 나로, 나아가야 할 시간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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