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씨

인간

방바닥 2008. 10. 30. 23:54

"안녕하십니까" 라고 인사를 하면 "아니요"
라고 대답을 해버리는 참으로 까탉스럽고 별로이고 재수없고 건방져 보이는 사람의 대답에도 씨익 웃으며 "어디 안좋으신가봐요" 라는 말 한마디 더 건낼 수 있게 되었고(그렇다고 그 사람을 좋아하는건 아니고) 내가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나 나는 이러저러한 것을 하고 있으며 남들과 달리 요러저러한 것도 하고 있어요, 라는 말에 목구멍이 근질거리던 예전과는 달리 군자의 말씀을 되뇌이며 아무말 없이 어설픈 웃음끼를 입가에 비치며 닥치고 찌그러져 있는 행동도 할 수 있게 되었다(그렇다고 내가 남들과 달리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고). 2004년 처음 깨달았던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 이제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헤깔릴 정도가 되어 쓸데없는 말이나 글은 밖으로 꺼내놓지도 않게 되었다(이건 솔직히 이 세상에 너무도 많은 똘똘이들에게 쫄았다).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무의식이라지만 수시로 뇌를 돌려가며 최대한 이 생각, 저 생각 만들어가며 자꾸만 감퇴되는 듯한 기억력 강화 훈련도 해주고 있으며(어찌 '서영은' 이름을 까먹을수가 있는가) 언제나 "왜" 라는 질문으로 어떤 사안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물론 노력뿐, 배경지식이 없으니 제대로 아는 것은 없다).
 한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조금 더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을 보니 27년 인생, 헛 산 것 같지는 않다. 허나 이 과정은 완료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기에, 그간 내가 겪었던 모든 것들이 살이 되고 뼈가 되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니 이렇게 삶이라는 연습을 통해 다가올 삶을 배워 나가는(나아가는 방향이 맞겠지) "삶" 이라는 것은 어쩌면 끊임없이 갈고 닦아도 후회와 아쉬움만 가득할 것 같은 멜랑꼴리한 생각도 스친다.
 조금 더 성숙해지고, 조금 더 인간다워지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겠다. 내가 만들어가는 삶과 나를 지배하려는 삶의 포함관계를 따지는 그런 큰 일은 못해낼 손 치더라도 적어도 교집합 부분의 영역을 넓히고 넓히려는 노력을 통해 지금보다 손톱에 낀 때 만큼이라도 나은 인간이 된다면야 더할나위 없이 기쁘지 않을까.
 그런데 쓰짤데없이, 정말 문득, 중2병걸린 장근석이 같은 글을 남기는 것을 보면, 음.. 나란 인간이 그닥 철이 들어있는 것 같지는 않다. 역시나 멜랑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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