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

차세대 리더, 능력부족

방바닥 2007. 11. 12. 03:18
 얼마 전 참여하고 있는 한 모임 게시판에서 댓글 싸움(?)이라기 보다는 댓글 토론이 일어났다. 한 학생이 올려 놓은 '이건희 회장의 지시사항' 이라는 문건의 내용을 올려 놓으면서 "나같아도 저렇게 했겠다. 미국은 로비가 합법인데 왜 한국은 안되는가?" 라는 글을 올려 놓았다. 냉큼, 대체 어째서 저것이 옳은 일인가라는 댓글을 달았다. 원문을 올려 놓은 학생은 "딱히 잘 했다는 것은 아니다" 라고 넘어갔지만 다른 학생이 정말 말도 안되는 이론을 늘어 놓았다. 그 댓글의 내용인 즉슨,
 
"현실을 보자. 이성으로 해결 할 수 없다. 나같아도 저렇게 하겠다. 로비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정치에 밉보였다가 망한 기업이 있다는 것을 다 알지 않느냐. 미국은 로비가 합법이다. 즉 삼성이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정치권에 손을 댄 것이다. 하나의 큰 기업의 뿌리를 좀먹는 것이 바로 정치다. 정치와 기업의 관계는 상하수직적 관계, 즉 주종관계다. 살아 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 삼성이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비자금을 만들었겠는가. 하위 10%버리지 말고 저도 뽑아주세요" 뭐 이정도였다.

 한 마디로 말도 안된다. 60, 70년대 한국을 말아먹었고 그 여파로 아직까지 제대로 된 기업지배구조가 나오지 않는 "정경유착"을 옹호하고 있을 뿐 아니라 김용철 변호사가 고백해 나타난 삼성의 본질적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정치권에 잘 보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랬단다. 그리고 그 로비는 미국에서 합법이란다.
 이에 대한 반론을 구구절절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다음날 그 글은 원문 전체가 삭제되고 말았다. 원문의 작성자가 더 이상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쳐한 조치를 보이지만 그에 대한 어떠한 말도, 즉 그 글에 달린 의견들의 삭제에 대한 어떠한 사죄의 말이나 이유도 달지 않았다. 한 마디로 "아 이새끼 또 왜 지랄이야" 이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의 말마따나, 자신의 기업이 잘 되기 위해서 정치권에 돈을 대고 로비를 하는 것이 그럭저럭 넘어갈 만한 일이라고 한다면 이 나라에 있는 모든 기업이 그 지랄을 한다면 대체 어떻게 되겠는가. 여기서의 답변은 뻔하다. 그것이 삼성이니까 괜찮다고 할테다. 세계 최고의 기업중 하나고 매년 청년 실업자들을 위해 일자리를 쏘는 기업이니 봐주자는 것이다.

 왜 삼성에만 허락하는가. 우리 모임의 회장이 삼성에서 유명한 분이라서? 우리에게 "대한민국사 이야기" 라는 극우의 책을 사비를 털어 고맙게도 소포로 집집마다 배달해 주어서? 년 큰 단위의 돈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어서? 이 모임을 통해 개개인이 발전을 얻고 능력을 함양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과 이 모임의 수장이 삼성의 핵심인물이라는 것은 별개다. 대체 각 학교의 리더들, 특히나 앞으로 '리더'가 되겠다는 사람들의 생각이 이처럼 편향적이고 한쪽으로 쏠려있어서야 되겠는가. 그나마 다행인것은, 이는 그 밖의 다른 의견의 존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즉, 조선일보가 있으면 한겨레가 있는 법인데 이 모임의 사람들은 한겨레의 존재를 모른다. 매경 이코노미가 있으면 이코노미21이 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한다.

 처음 이 모임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수장의 "여기 한총련같은 애들은 없겠지?" 뭐 이런 말들과 공학한림원이라는 모임의 특수성덕에 그 밑의 대학생들도 그럴까, 라는 생각에 한마리의 미꾸라지가 되어 그들과 다른 의견을 보여주자, 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역시나였다. 그들이 듣는 강의, 포럼등은 모두 한 쪽의 일방적인 의견이었고 이에 애석하게도 많은 대학생들은 그 사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안타까웠다. 모두 유능하고 똑똑하고 활발하고 앞에 나서서 무언가 진두지휘하는데 열심인 대학생들의 사상이, 이처럼 편향적이라는 것.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옳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다른 생각역시 존재하며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서 수많은 고민끝에 나의 위치를 정하는 것. 그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활발한 토론이 필요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임내에서 '토론' 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수용만이 있을 뿐.

 내가 잘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나의 지식이 조금 더 풍부하고 철학과 논리가 탄탄했더라면, 그 정도 위치에 오를만 하다면, 미약하지만서도 모임에 참여했던 지난 1년간 내가 이루고 싶었던 더욱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지는 않았을까. 글이 길지만 내용이 없다. 이것이 바로 나의 능력의 한계다. 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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