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이모가 돌아가셨다. 아들이 있는 베트남에 갔다가, 호텔에서 갑자기 쓰러지셨다 한다. 사촌형이 재빨리 인공호흡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이모는 베트남에서 한줌 뼛가루가 되어 서울로 돌아왔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집근처 살았기에 항상 "놀러와. 밥 해줄게"라고 말씀하셨다. "네"하고 웃어넘기곤 했다. 아침에 택시를 타고 이모댁으로 갔다.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서울 안암동에 똬리를 튼지 벌써 4년. 4년 동안 20분이 없다는 이유로 이모를 찾지 않았다.
집은 그대로였다. 가장 마지막에 들렀을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교때였나, 이모집에 놀러갔을 때, 이모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닭볶음탕을 탁자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닭볶음탕은 진짜 너 먹으라고 한거야." 그날따라 눈이 많이 내렸다. 집이 언덕에 있어 아빠는 더 늦으면 길이 미끄러워진다고 옷을 입으라 했다. 밥 한술 못뜨고 일어나야 했다. 이모는 두고두고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2009년, 큰이모와 부모님을 모시고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아들은 해외에 있고, 딸은 출가외인이 됐고. 넓은 집에서 혼자 보내기 외로웠던 큰이모는 젊은이들이 보는 연극에 배꼽을 잡고 웃으셨다. 너무 웃어서 배우들이 쳐다볼 정도였다. 즐거워하셨다. 이후 명절때만 이모를 뵀다. "이새끼 놀러오라니까 그렇게 안와"라며 핀잔을 주었다. "결혼할 사람 생기면 손잡고 같이 갈게요"라며 웃었다. 최근 몇년간, 큰이모와 나 사이에 기억나는 대화의 전부다.
큰이모의 영정사진을 보자 머리를 한대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큰이모의 죽음이 현실로 다가왔다. 사촌누나가 울었고, 큰이모의 동생인, 엄마도 울었다. 닭볶음탕이 떠올랐다. 기억력은 자꾸 쇠퇴하지만, 큰외숙모가 해주신 식혜와 큰이모의 닭볶음탕은 수십년이 지나도 머리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울컥했다. 몇달 전부터 건강이 안좋았다고 했다. 엄마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때라도 찾아뵀어야 했다.
가족들이 모여앉았다. 무거운 공기 속에서 큰이모의 어린 손녀만이 까르르 까르르 인형놀이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 어디갔어?"라고 묻는 아이에게 사촌누나는 "여러밤 주무시고 오실거야. 못오실지도 몰라"라고 답했다. 아이는 태연한척 보였지만, 큰이모가 쓰러졌을 때 그 옆에 있었다 했다. 사촌형과 사촌누나가 인공호흡을 하며(사촌형은 의학을 공부했다) 큰이모를 살리기 위해 절규하고 있을때, 어린 아기는 그 모습을 옆에서 그대로 보고 있었다 했다.
침묵이 이어졌다. 가족들이 한명 두명 집을 찾았다. 인사를 하고 절을 했다. 작은 이모는 쑥떡을 싸왔다. 오랜만에 사촌 동생도 왔다. 매형과 함께 앉아 쑥떡을 먹었다. 집이 조금 넓은게 다행이었다. 한편에서는 울고 있었고, 한켠에서는 쑥떡을 먹으며 못한 이야기를 나눴다.
끼니때가 왔다. 밥은 먹어야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눈물에 눈가가 젖어 있었지만, 그래도 배는 연신 음식을 달라고 외쳐댔다. 짜장면과 짬뽕, 짜장밥 등을 20그릇 넘게 시킨 것 같다. 각자 하나씩 챙겨들고 먹었다. 많이 만들다 보니 짜장면은 조금 불어있었다. 맛이 없는 짜장면이었지만 꾸역꾸역 뱃속으로 집어 넣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사람은 먹을때 정말 애잔하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라는 말도 너무 애잔해서 밥을 먹다 보면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래도 먹어야지, 어쩔 수 없다. 밥을 먹고 아쉬움에 군만두도 하나 더 집어 먹었다. 이럴때는 나 자신이 너무 싫다.
기자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낄 때가 많다. 일이 많거나, 갑작스레 불려 나갈때, 뭐 그런건 상관없다. 잘났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고학력자 투성이다 보니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환경에 놓여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나름 공감능력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그렇게 이기적으로 보인다. 이런 곳에서 이정도면 사람이야, 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너무 공감능력이 떨어져서 나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다. 병신같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갔다. 아무생각 없이 며칠을 보내고 싶다.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일은 원래 아무 생각 없이 하니까 상관없다). 12월 5일, 6일, 7일, 8일. 정신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그렇게 있고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