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감투

방바닥 2007. 1. 19. 00:13
  언제부터 '감투' 를 즐겨 썼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니 초등학교 4학년때가 떠오른다. 반장 선거를 앞두고 후보 넷 정도가 각축을 벌였는데 나름 '파' 까지 나뉜채로 열나게 선거운동을 했었다. 마지막 투표용지에서 내 이름이 확인되는 순간 나를 지지했던(!) 아이들이 만세를 불렀고 얼라였건만, 권력욕이라는 것에 취해 우쭐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아마 그랬을 듯). 초등학교 6학년 때, 단일후보로 나가 80%의 찬성을 얻고 반장에 당선됐다. 담임 선생님이 나를 탐탁치 않게 여기셨는지 "높은 찬성률도 아니고..." 라며 한쪽입술을 올리는 표정을 지었을 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반장 자리를 내놓겠다고 나름 배짱있게 말했고 여차저차, 즐거운 반장 생활을 했다.
 중학교 2학년때, 단순히 성적이 높다는 이유로 반장을 맡게 되었고 당시 비봉고 학생과장 출신의 담임 선생님께 쫄아 뭐든 열심히 했다. 반이 두 무리의 주먹(?)으로 파가 나뉜 상태였는데 나의 노력이었는지 어땠는지 모르지만(실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나중에는 하나의 무리로 융합(?)되는 기염을 토하며 우쭐우쭐 거렸었다.
 감투욕이 극에 달한 시기는 중학교 3학년.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해 열나게 선거운동을 하고 다녔다. 하지만 키와 얼굴,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고 18표 차이라는 간소한 차이로 부회장에 만족해야했다. 한 일은 별로 없었다. 그저 감투에 우쭐거렸다.
 고1때 부반장이 되어 '청소' 에 열을 올렸다. 학교 자체가 워낙 드러웠기에 다그쳐 가며 청소를 했고 결과는 고2때 추천으로 청소반장이 되었던 것. 체육부장이 왠지 메리트 있어 보여 체육부장을 하기도 했다. 반장 한 번 해보고 졸업해야지, 라는 감투욕이 또 살아났다. 고3때 반장을 거머쥐었고 부반장과 함께 반을 말아 먹었다. 반 구성원들끼리는 오지게 재밌게 지냈지만 담임과의 전투대결 모드로 들어가 마치 투쟁하듯, 담임과 싸우다 졸업했다.
 대학에 들어가, '능동' 이라는 단어에 심취했던 나는 '대표' 라는 이름이 들어간 모든 감투를 쓰기 시작했다. 열혈반 02학번 대표, 열혈반 부학생회장, 천하반 부학생회장. 03년도 학생회장이 학생회비를 삥땅친 것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한 것을 제외하고는 나름 무난하게, 임기를 마쳤고 또 평가를 받았다.
 복학을 하고 난 뒤, 어리버리했던 상태에서 덜컥, 신소재공학부 학생회장직을 맡아 버렸다. 낚시성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의욕있게 출발했고 또 활동했다. 하지만 인수인계의 부족과 과가 돌아가는 생리를 파악하지 못한 채 자꾸만 태클이 걸리기 시작했고 결국 한 학기가 끝나고, 나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있었다. 2학기때 시도하려 했던 첫 행사마저 좌절되자 어느새 의욕은 무기력으로 변해있었고 진이 빠질만큼 빠져버렸다. '학생회장' 소리에 굉장히 민감해지기도 했고 한 선배의 까칠한 대응에 여러번 발끈하기도 했지만 어느덧 '체념' 속에 임기를 마치게 되었다. 나름 많이 지쳤었는지, 다시는 감투를 쓰지 않겠다고 여러번 다짐했지만 처음 활동하는 YEHS에서 또 다시 홍보부장을 맡았다. 현 회장의 권유에 '절대 안한다' 를 연발했건만 왜 이리 마음이 약해지는지, 결국 오케이 사인을 보냈고 여기서 끝내려 했다. 하지만 인재제일 학생기자단의 15기 회장을 맡고야 말았다. 원치 않던 일이었고 생각지도 않았기에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또 혼란스러웠다. 단순히 나이가 많고 수도권에 산다는 이유로 지지를 받은 거라면 그것만큼 큰 일도 없을텐데. 벌써부터 손등의 혹이 다시 자라고 있는 듯 하다(스트레스를 받을 때 튀어 나온다).
 과 독서소모임 회장 자리를 내놓고 YEHS독서 소모임을 탈퇴할 생각이다. 과 학생회장 후임을 찾기 위해 지금부터 레이더를 풀 가동해야 하고 어떤 전공과목을 뺄지도 생각해야 한다.
  점을 잘 믿지는 않지만, 한 사주카페에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스트레스 엄청 받아요. 뭘 하든. 평생 그럴 거에요"
 쭈욱 나열하다 보면, 나의 감투욕이 왜 생기는지 알 듯 했는데 막상 떠오르지는 않는다. 부족한 다른 면들을 대표라는 이름 하에 조금은 약화시키고 싶은 심리인지, 내세울 것이 없음에도 뒤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감투로 자꾸만 눈이 가는 건지.
 느낌이 좋지 않다. 열심히 하고, 또 노력은 할테지만, 과 확생회장직을 맡았을 때와 너무도 비슷한 상황이기에, 그래서 더욱 두렵고 또 걱정이 앞선다. 대학 1, 2학년때의 그 패기가 어느새 이렇게 사그라들었는지. 세상 참 힘들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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