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씨

과도관 생활

방바닥 2008. 5. 15. 15:01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6년 12월, 복학 2학기째 마지막 시험인 물리화학2 기말고사를 앞두고 밤잠 설쳐가며 공부하다 아침에 쓰러진 모습의 사진이다. 양 옆으로 좌전정환, 우꽃상곤의 사진 구도가 기가 막히며 알파벳 C를 뒤집어 놓은 듯한 불편한 자세 속에서도 단잠을 자고 있는 원씨의 모습이 나름 인상적이다.

 2007년 2학기부터, 슬슬 과도관 생활에서 탈피를 했던 것 같다. 졸업을 앞둔 동기들의 꾀임에 자주 빠지기도 했고 전공논문과 산학협동강좌등 학점이 아닌 Pass, Fail 과목을 여럿 들으면서 전 학기 보다 조금 널널해진 커리큘럼 탓도 있었다. 취업에 대한 걱정 역시 없었기에 남들처럼 뒤늦게 토익 점수에 매달릴 필요도 없었고 학점도 높지는 않지만 취업의 마지노선인 3.0 을 상회했기에 그닥 걱정도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과도관 생활에서 탈피해 나갔다. 1교시가 없는 날이라도 9시 이전에 도서관에 도착, 책을 깔아 놓고 신문을 본 뒤 알던 모르던, 무작정 공부를 하고 그러다 스르륵 잠에 들기도 하고 친구들과 커피 한 잔의 노가리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그 때 그 시절.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일단은 가방이 과도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마음이 놓였던 지난 4학기의 그 때가 살짝 그립기도 하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뭐라도 되는 것 마냥 가방을 싸들고 튀어 나와 맥주 한 잔을 하던가, 원고지를 펼쳐 놓고 만년필로 말도 안되는 글들을 씨부렁 거리기도 했다. 항상 앉는 자리를 중심으로 모여있다 보니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낯이 익었고 뉴 페이스들이 수두룩 등장했을 때야 "본격적인 시험의 시작이구나" 하며 날짜 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보내온 과도관 생활. 얼마 전 전공 시험을 앞두고 오랜만에 찾은 과도관 4층 열람실은 낯설었다. 시험 기간이 아니었음에도 엉덩이를 눌러 앉히며 머리 싸매고 펜을 굴리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새로웠고 평소 앉던 좌석 근처에 자리를 잡고 당일 있을 시험 자료를 들추는 내 자신 역시 익숙치 않았다.
 한 시간 반 가량 앉아 있다가 쑤신 양 볼기짝을 촥촥 털며 가방 지퍼를 닫았다. 예전 처럼 오래 앉아 있기도 벅찼다. 그렇게 나는 자리를 비웠고 그 자리는 복학생이던, 취업 준비생이던, 고시 준비생이던, 또 다른 누군가가 내 엉덩이의 따듯한 온기를 이어 받아 열심히 펜을 굴릴 것이다. 어쩌면 현 과도관 내 상위 90% 이상에 들지도 모를 나의 학번과 나이를 방패삼아, 나도 덕담 한마디만 하면, "그런 열정을, 어디 가서도 놓지 말고 보다 큰 꿈을 꾸면서 펜을 굴리세요. 후배님들, 제가 먼저 열심히 사회 속에서 터를 닦아 놓고 있겠사와요. 화이팅"
 이제 정말, 졸업할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원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태  (4) 2008.05.28
이상형, 시험, 통화 = 대화  (2) 2008.05.16
객관화  (0) 2008.05.14
기다림의 미학?  (7) 2008.05.13
선거  (2) 2007.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