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10년 후에도 이렇게 즐겁게 지낼 수 있을까. 절친했던 고등학교 친구들과 목욕탕에서 서로의 때를 밀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서로의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인생을 이야기하고 미래를 이야기하곤 한다. 내가 건물을 지을테니 너가 3층에서 병원 의사를 하고 너는 뭐할래? 하던 말들은 어느덧 '현실' 이라는 차가운 벽 앞에서 우스갯 소리 축에도 끼지 못하는 아무런 의미없는 대화가 되고 말았다. 그땐 그랬지, 라는 말과 함께 추억으로 묻으며 이제는 졸업 학기를 계산해 토익 점수에 신경쓰고 남은 학점 계산과 평균 평점이 얼마가 되는지를 따지며 사회로 뛰쳐 나가기 위해 알게 모르게 서로서로, 그렇게 준비를 해 나가고 있다.
이쯤되면 술자리에서 만날 들려오는 소리란, 누구네 집은 뭐를 한다더라, 앞으로 살 걱정 없다더라, 기깔난 차 봤지? 걔네 집이 그 정도랜다, 누구는 좋겠다, 쟤네는 부럽네, 우리는?, 그럼 우리는?
정말 원하던 꿈을 살짝 포기하면서 뒤늦게 나마 다시금 엔지니어의 길을 걷기 위해 준비를 하려는 마음이 커지는 나 자신에게 없어진 꿈의 상실만큼이나 그런 이야기들이 너무도 큰 목소리로 달팽이관을 자극하곤 한다. 그럼 나는?
중학교때 "공부 잘해봤자 월급쟁이밖에 더하냐!" 라는 말을 하고 다녔던 선생님과 고등학교 1학년때, "너네 지금부터 빨리 9급 공무원 준비해라" 라는 말씀을 하셨던 선생님들의 선견지명이 씁쓸하게 다가오는 것은 꿈이 사라진 수많은 대학생들의 현 모습 그 자체일 듯 싶다. 분수에 맞는 생활, 그것이 중요하지만 나중에 돈이 부족해 너의 가족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될 때는 어떻할거니? 라는 가슴아픈 질문에 잠시 흐트려졌던 나의 마음을 단단히 붙잡아 본다.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모든 것을 자본으로 평가하고 자본적 가치를 매기는 사회는 발전이 없는 사회다. 사회에 순응하는 영리한 사람 보다는 사회를 바꾸려는 어리석은 사람의 노력으로 인해 사회는 진보해 왔고 또 이만큼 나아왔다고 믿는다. 지금 내가 고민하는 이유, 내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서 술 잔을 기울이며 친구들과 '부럽네' 라는 말을 하는 이유 역시 26년 동안 내 주위의 삶을 지배해 온 천박한 자본주의적 삶의 결과물일 것이다.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는 사회, 도태된 자들이 반드시 존재하는 사회, 그리고 그 안에서 이기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나 역시 어쩌면 그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생물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산들, 나 자신에게 뿌듯할 수 있을까. 나의 승리로 인해 한 켠에서 쓴 울음을 흘리고 있을 그들을 외면하는 삶이 가치가 있는 삶일까.
조금 더 진지하게 앞으로의 나의 삶, 나의 길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본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자던 똥개철학. 그 부끄러움은 단순히 물질적으로만 치부되는 삶은 결단코 아닐 것이다. 나의 개똥철학과 똥개철학이 흔들리지 않는, 그러나 그 똥개철학과 개똥철학들이 남들로 하여금 비웃음을 살 수 있는 빈틈을 보이지 않는 것. 아, 이거 오지게도 어려운 일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