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방바닥 2007. 5. 6. 19:48
 누가 뭐래도 내 신체상의 장점은 '눈' 이었다. 쫙 찟어진 외형상의 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정체와 망막 사이에서 시신경들이 몸부림 치고 있는 '시력'. 어려서부터 눈이 나빴던 누나와는 달리 나의 눈은 천리안이었다. 1.5는 기본이었고 아무리 멀리 있는 칠판의 글씨도, 16차선 대로의 건너편에 있는 사람의 얼굴도 반짝반짝 거리며 다가오곤 했다. 그러던 눈이, 컴퓨터와 친해졌던 지난 2년 동안, 순식간에 나빠지고 말았다. 결국 가뜩이나 험상 궂은 얼굴을 자주 찌푸리며 초점을 맞춰야 했고 결국 보다 못한 어머니까지 '무섭다' 며 안경 맞추기를 권하셨다. 그래서 찾은 안과. 시력은 0.3에서 0.5를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안경점을 찾아 안경을 맞추는데 이것저것 끼어 봐도 이 험학한 얼굴에 어울리는 안경테는 없었다.
 "아저씨. 제 얼굴 딱 보세요. 이 얼굴에 어울리는 안경, 하나만 골라 주세요"
 나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니 자기 입으로는 할 수 없는 말을 내 스스로 대신 했다는 것 때문인지 안경점 아저씨는 곧바로 안경 하나를 집어 주었다. 무난하게도, 아무런 색도 없고 그 어떤 멋도 낼 수 없으며 누구나 껴도 아. 쟤는 안경을 꼈구나, 라는 느낌을 받는 무색무취의 건조한 안경이었다.
 작년 한 해 동안 꾸준히 끼었던 안경이 올 해 들어 거추장 스럽게 다가왔다. 안경 위로 세수를 하거나 안경을 끼고 잠이 들곤 하던 뻘짓도 싫었을 뿐더러 책을 읽을 때 오만상을 다 찌푸리며 손으로 얼굴 부위를 심하게 문지르는 이상한 버릇을 갖고 있던 터라 안경이 계속 걸리적 거렸다.
 결국 안경을 벗고 다니는데 문제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가뜩이나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이 '어, 회장!' 하면서 인사를 하곤 하는데 나약한 기억력과 흐릿한 안구 덕에 손을 흔들어야 할지 고개를 숙여야 할 지 모르는 난처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곤 한다.
 렌즈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 작은 눈에 렌즈를 넣는 일이 더욱 고역일 듯 해서 감히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 시력은 더욱 나빠진 듯 안경을 껴도 과도관 끝에 앉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 확실치 않다. 이제 내가 내 몸에서 내세울 수 있는 부위가 어디가 있을까. 젠장. 또 다시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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