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

대세

방바닥 2006. 11. 15. 16:34

대세라는 것이 있다. 옷을 입던간에, 과를 선택 하건간에, 읽을 책을 고를때도, 강의를 선택 할 때도,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이 대세에 기울기 마련인데 고려대학교 역시 다르지 않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발간한 후보별 정책 자료집을 살펴봤다. 건물의 입구 곳곳에 가지런히 쌓여 있는데 좀처럼 학우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애물딴지 마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기도 했다.

후보는 세 팀, 곧 선거도 다가오고 해서 첫 장 부터 살짝살짝 살펴보니 예상대로, 전 공대학생회장이자 공대공감대 출신이 후보로 떡하니 얼굴을 올려 놓고 있었다. '비운동권'을 기치로 내걸은 그 친구는 공약 곳곳에 '학생들은 운동권을 싫어한다. 나는 비운동권이다' 를 연발하며 정치운동을 배제한, 순수한 학우들을 위한 총학생회가 되겠다, 라는 말로 연대와의 게임대회, 봉사활동과 그 확인서 간편 출력,  누적 학점제 적용, 중광 사물함 증설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그리고, 그들은 통합된 보건대 2,3학년 학생들은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선거권을 줄 수 없고, 올 해 입학한 보건대 1학년 학생들만을 우리 학교 학생으로 간주하고 그 학생들을 위한 학생회가 되겠다고 부르짖는다. 출교자건에 대해서는, '의견수렴' 이라는 말로 피하고 있으니 고대생의 90%가 출교를 찬성하는 입장이니 '그들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라고 받아들여도 무방할 듯 보인다.

허나 정치에서 벗어나겠다는 그들의 목소리는 타 운동권 선본들의 주장에 비해 더없이 나약하다. 심지어 사회 문제를 배제한, 단순히 학교내 구성원들을 위한 공약만 따져보더라도 여타 두 선본의 그것에 비해 유치하기 짝이없을 정도다.

우선, 그들은 사회적 약자, 곧 대학내 약자에 대한 그 어떤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장애우에 대한 배려와 여학생들에 대한 배려, 그리고 등록금 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입을 닫고 '학교측'의 입장만을 강조한다(고대문화 인터뷰). 또한 단순히 볼거리, 즐길거리 와 같은 행사 위주의 공약으로 공연 기획팀을 방불케 한다. 타 선본에 비해 사회에(학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철학이 없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단순히 지나가던 학교 학생들이 웃음을 짓고 눈길을 끌면 그만이라는 것이 그들의 전부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공약들과는 관계없이 대세는 "그래도 운동권 보단 낫잖아?" 라는 말로 수렴되는 주의의 의견들이다. 총학생회가 운동권이었다고 해서 현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었다. 아, 등록금 투쟁하고 출교자 문제 일어 났을때, 주변에서 '고대 병신들' 이라는 말에 쫄아 총학생회를 욕하곤 했으니 영향을 받긴 받나 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학교 생활의 변화와 민족고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발전을 위해서는 조금 더 신중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즐기고 마는 이벤트성 공약 보다는 조금 더 앞을 내다보는 그런 공약에 더욱 점수를 줘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몇 년 더 다녀야 할 학교에 남아있을 내 이익에, 비싼 등록금에 대한 권리행사에 더욱 부합하지 않을까.

그래도 대세는 거부하기가 힘들다. 다들 공대생들의 단결된 후보 밀어주기와 비운동권을 내걸은 그 '대세'로 인해 당선을 당연시 하는 분위기다. 그 사이에서 조그맣게 타 후보를 지원하는 내 목소리는 흩날리는 낙엽처럼, 나약하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뿐이다. 그나마, 어윤대 전 총장이 재임에 실패한 것에서 위안을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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