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

치사랑

방바닥 2006. 12. 29. 01:24
 자식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한국처럼 가족주의가 강한 나라에서 내리사랑은 '정' 이 한바가지 듬뿍 담긴, 탐스러운 표현이다. 반대의 표현도 있다. 손 윗사람의 아랫사람에 대한 사랑을 일컫는 내리사랑에 견주어 아랫사람의 손윗사람에 대한 사랑을 일컫는 치사랑(올리사랑)은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라는 속담이 말해주듯이 내리사랑에 비해 많이 부족한 사랑이다. '치사랑 도덕실천운동본부' 라는 단체는 "치사랑을 해야 하는 이유"로 부모님께 빚진 생명, 이를 갚지 않는다면 우리들이 일하고 노력하는 것이 그 빚을 갚는데로 가게 된다며 치사랑으로 우리가 빚 진 것을 돌려드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과한 치사랑이 눈총을 받고 있다. 고려대학교 이필상 총장의 논문 표절에 대한 학우들의 치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김병준 전 교육부 장관의 논문 표절 시비가 일었을 때 관행이라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높은 도덕성이 요구 된다는 이유로 수많은 비판을 받았고 결국 단명하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총장이라는 이유로 논문 표절의혹을 나아가 운동권과 출교자들의 음모론, 국민일보등 언론 세력의 학교 죽이기로 몰고 가는 모습은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판에 박인 말로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고려대학교 극우모임인 자유게시판에는 슬슬 관련 글들이 들끓고 있는데 이필상 교수의 '관행'과 '죄송하다' 라는 해명글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는 학우부터 시작해서 모교 출신 기자의 보도에 '조금만 눈돌려 보면 타학교에도 이런 사건은 꽤 많을텐데' 와도 같은 아쉬움을 토로한 글도 있었다.
하지만 모교수의 말처럼, 그의 해명은 수많은 양심적 교수들을 도매급으로 넘겨 버리는 단순 해명글에 불과할 뿐, 그의 잘못을 덮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고려대학교 학생으로서 이번 사건이 교수 사회의 '관행' 에 경종을 울리는 시범 케이스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없지 않은데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학교측의 재빠른 대처이다. 조사위원회 착수에 들어간 학교는 "총장이라고 다르게 대하는 경우는 없을 것. 일반교수와 똑같이 적용하겠다"며 현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마땅히 그래야 하며 그리고 이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논문 표절을 덮어버리고 식구 감싸기의 모습을 보이는 것 보다야 자신의 가족에게도 비판의 칼날을 곧추 세울 수 있는 고려대학교의 모습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옳은 방향이 아닐까.
강준만 교수는 한국인 코드라는 책에서 한국인의 특징 중 '정' 에 대한 코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국인은 국가의 이익과 가족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 정의 이름으로 가족의 이익을 앞세우는 경향이 강하며 이는 부정부패가 성행하는 주요 이유가 되고 있다... 그렇다. 한국인들은 법에 의해 적발돼 공개된, 큰 부정부패에 대해서만 분노할 뿐, 부정부패 그 자체에 대해 분노하는 건 아니다" 맞는 비유가 될지 아직도 알쏭달쏭 하지만 하여튼 고대인이기에 학교의 수장이 논문 표절에 휩싸인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하지 않을까.

개그맨 전유성씨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나라는 독립문을 옮겼대요. 도로 만들려고. 그리고 그것을 자랑해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봐요. 독립문을 냅두고 도로를 우회해서 만들면 되잖아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면 되요. 우리는 독립문을 지키기 위해 도로를 우회해서 지었다, 라고요"
인촌 김성수 선생의 친일 의혹을 무조건 부정하고 학생들의 친일재판을 막는 학교측과 그를 옹호하는 학생들, 이필상 총장의 논문 의혹과 그를 감싸는 학우들. 약간 돌아 생각하면 학교 설립자의 친일 의혹을 주장하며 재판하는 비판적 고대인, 학교 총장의 잘못을 비판할 줄 아는 고대인.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후자에 더욱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나는, 누구 때문일까. 이것도 노무현 때문일까? 아, 이제 고려대학교에서는 출교자탓, 운동권 탓일게다.

'딴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임제  (0) 2007.01.11
묻어가기  (2) 2007.01.04
대세2  (0) 2006.12.07
대세  (0) 2006.11.15
비겁한 변명  (0) 2006.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