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세상

방바닥 2006. 11. 2. 23:26
 200여명이 내뿜는 이산화탄소에 취해 비틀거리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중간고사 기간이 무색한 공대의 시험기간은 이번 학기 역시 지나치지 않았다. 겨울 바람에 하나, 둘 떨어져 흩날리는 낙엽처럼 널부러진 책들과 연습장 사이에서 펜을 들고, 두꺼운 전공서적과 씨름하기를 2주일째.
시험이 바로 다음날 이거나 이틀 연속 이어질 경우에는 드래곤볼의 시간의 방에 들어간 것 마냥, 철저하게 고립된 외딴 섬으로 들어간 느낌이다.
물론 신문 역시 가방 속에 고이 모셔두고는 읽지 못한다. 아니, 시험에 대한 예의를 차리느라 부러 꺼내지 않는다. 시험이 끝나고 3일치의 신문을 찬찬히 펼치며 세상에 속해있음을, 그리고 나 역시 한 둘레에서 굴러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바삐 돌아가는 세상, 단 하루 사이에도 많은 일들이 주위에서 가득가득 일어나는데도, 잠시 하루 이틀 잊는다 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
북핵 문제가 어찌 돌아가는지, 경제는 어떠한지, 심지어 우리집은 잘 돌아가고(?) 있는지. 내가 신경쓰지 않아도 잘만 돌아가는 세상, Pingpong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세상은 우리를 잠시 깜박하지만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별개의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이것이 그적저적,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인걸까.
내일 아침부터 이틀동안, 다시금 나는 시간의 방으로 들어간다. 모든 시험을 마치고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날 맞이할 세상은, 날 신경쓰지 않겠지만, 그저 그렇게, 잘 굴러간 모습으로 나를 반길 것이다. 살짝 우울한 느낌이다.

2006.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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