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씨

변화

방바닥 2008. 6. 21. 00:48
 꼭 면접이나 인적성 검사를 앞두고는 술약속이 생긴다. 오늘 현대자동차의 최종 면접을 앞두고 늦은 밤까지 과음한 덕분에 아침 기상을 걱정했건만 다행히 '아침에 일어나는 기계'는 아직 죽지 않았다. 술을 그렇게 쳐마시고 4시간 만에 눈을 떠 벌겋게 부은 얼굴과 술과 담배에 쩔은 입안을 물로 헹구고 양복을 꺼내 입었다. 얼굴이 조금 하얗게 보이기를 바라면서 선크림을 바르려 짰는데 엄청난 양이 딸려 나오는 바람에 희멀그레(?) 붕 뜬 얼굴이 되어 버렸다. 부랴부랴 성적 증명서, 재학 증명서, 졸업 증명서, 토익 성적표등을 뽑고 양재로 향했다.
 서초구민회관 앞에서 셔틀을 타라는 말을 상기하며 기다리는데 속이 더부룩한게 연신 골골골 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더해서 '이거 현대기아차 본사 지나가죠?' 라는 물음에 '그런데 안가요' 라는 쌀쌀맞은 셔틀버스 아저씨의 대답에 힝 하며 내리다 다리를 접지르는 바람에 무릎이 땅에 닿을 뻔 했다. 그냥 걷기로 하고 땡볕을 따라 한참을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는데 셔틀버스가 현대기아차 본사 근처로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니미, 아저씨 왜 그러셨어요.
 행여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에 같이 엄청 술을 쳐마신 부현이에게 부탁을 했었다. 신뢰가 간 것이, 여자친구 소연이를 아침에 깨워줘야 한다기에 덩달아 부탁을 했더니 정확히 9시에 전화가 걸려왔다. 기특한 자식.
 면접이라고 해야 공채를 지원한 학생들과는 달리 너무도 편안하게 진행되었다. 미수다에 출현한다는 외국인의 질문에 어렵게 저렵게 대답을 하다가 "부모님이 해주신 가장 기억에 남는 충고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이거다' 라며 자신있게 "My parents said to me that Becareful woman" 이라고 답했다. 뻥 터지고 말았다. 심지어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한국인 면접관 역시 크게 웃으며 내게 질문했다. "아빠가 그러더냐, 엄마가 그러더냐" 기다렸다는 듯이 "아빠가 그러셨습니다. 옆에 어머니를 쳐다보시며" 라고 이야기했고 긴장의 연속이었던 면접관 분위기는 순식간에 화기애애 즐거워졌다. 성공이다.
 임원 면접 역시 어렵지 않았다. 간단한 몇 개의 질문을 끝내고 "지난 1년여 동안 교육 받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앞으로 현대자동차가 세계속에서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우리 다 같이 열심히 달려 봅시다" 라는 말을 들으며 면접실을 나왔다. 남양으로 간다. 7월 14일, 연수원으로 들어간다. 남은 3주간의 시간.
 어떻게 변하게 될까. 현재 내가 갖고 있는 기본 틀(?)은 변하지 않을테다. 아니, 지금보다 더욱 유들유들, 웃음도 많아져야 하고 그리고 조금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손수건에 묻어 나오는 허연 선크림을 연신 벗겨내며 미래의 원씨상을 그려본다. 이제는 나를 감싸고 있는 울타리는 나 자신이다. 더 이상 '학생' 이라는 이름이 나를 감싸주지 않으며 부모님이라는 커다란 보호막 역시 걷어내야 할때가 되었다.
 조금 더 커야 하고 조금 더 어른스러워져야 한다. 조금 더 넓어야 하고 조금 더 인정머리 있어야 하며 말 그대로 조금 더 능력 있어야 한다. 두려우면서도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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