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영어강의

방바닥 2006. 9. 1. 21:41
 어쩌다 보니, 벌써 기나긴 방학이 끝이 나고 강의실에 앉아 한숨만 쉬고 있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 할 때 까지, 아니 학교가 망하는 그 날까지 변치 않을 공대의 영어강의를 듣고 있으니 많은 지식인들이 지적했던 영강의 문제점들이 연신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자연히 수업의 관심도는 떨어지고 성적은 바닥을 칠 수 밖에.
개강 첫 강의 역시 영강이었다. 첫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little'만 나가겠다는 교수님의 말에 한숨을 쉬며 펜을 끼적거리다 보니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이 생각으로는 이도 저도 아닌, 백해무익한 결과가 또(!) 나을 것이라는 예감이 문득 들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두가지다. 내가 평소 생각했던 영어 강의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한 편 아직 과 내에 결성되지 않은 영강의 문제점에 대한 공론화 작업을 펼쳐가는 것과 그런 생각을 싹 잊고 영강을 받아들이며 미력하나마 조금씩, 발을 넓혀가는 것. 내 성격으로 보건대 첫번째 방법을 실행해 나갈 수 있는 의지는 물론 확고한 철학과 똘똘한 머리가 부족하기에 고난의 길이 예상될 뿐더러 영강을 옹호하는 교수님들과 학생이 대다수인 지금, 자칫하다간 학창시절에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따' 라는 것을 당할 좋은 기회가 될 듯 보인다. 더군다나 과목의 성적은 선생님에 따라 달라진다고 영강 과목의 점수를 모두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두 번째 방법은 다소 힘들겠지만 일단 변해가는 사회에 적응을 한 뒤, 누구나 인정을 할 만한 점수를 받은 뒤에도 계속해서 영어강의의 문제점을 지적해 나가는 것이다. 강준만 교수가 이야기했듯이 서울대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울대생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듯이(맞을겁니다 아마...) 영어강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는 일단 영어강의에서 무난한 점수를 따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영어강의의 점수가 개판인데 영강이 어쩌구 자시구 떠들다가는 '쟤 영어 못해서 저래' 라는 말을 듣기 딱 좋기 때문이다. 이래선 나의 진정성이 제대로 전달될리 만무하다.
결론은 이미 지어졌다. 어느새 전공필수 과목의 대다수가(75%) 영어강의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힘과 머리가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영어강의에서도 좋은 점수를 얻으면서 주변 친구들부터 차근차근 귀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생각이 결론에 이를 쯔음 수업이 끝이 났다. 학생들의 시무룩한 얼굴에서 번지는 포스를 느끼셨는지 20여분 만에 2학기 첫 강의는 끝이 났다. 역시나 오늘도, 나는 아무런 말도 알아듣지 못했다. 투 올 쓰리, 그리고 홈월크, 라는 단어를 빼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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