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이동/치매

방바닥 2025. 1. 30. 22:53

"아빠가, 미안하다. 내가 정말 미안해."
 어떻게든 참아보려 했는데, 이 몇 마디에 무너져 내렸다. 아빠의 병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꺼이꺼이, 말 그대로 목놓아 울 정도로 단전이 끌어올랐다. 입을 꽉 물고 참았다.
"응" "그래서" "나가자" "먹었어" 이 말 외에는 할 수 없었던 아빠였다. 눈은 항상 힘이 없었고 촛점을 잃었다. 목소리도 그랬다. 한마디 이상 연결하지 못하던 아빠가 엄마의 울음소리에, 울음을 참고 있던 내 목소리에, 핸드폰 너머에서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치매. 정말 지랄같은 병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사라진다. 아기처럼 변하는데, 몸은 늙었다. 지켜주는 사람은 무너져 내린다. 엄마는 우울증에 걸렸다. 밤마다 밖으로 나가려는 아빠를 막으려다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증상이 심해졌다. 아빠를 잃었고, 엄마까지 잃었다.
 엄마는 아빠를 놓지 못한다. "그냥 나를 때렸으면 좋겠어." 이 말에 하늘이 흘러내렸다. 지지리도 못살던 집안을, 어떻게든 먹고 살만하게 만든 아빠였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놓을 수 없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던 아빠는, 살만한 나이가 되니 치매에 걸렸다. 불쌍해서라도 엄마는 아빠를 놓지 못한다.
 치매 환자들을 위한 센터에 다녔다. 아침 9시에 가서 오후 5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숨통이 트였다. 아빠는 가장 어렸다. 증상은 심했다. 정신이 돌아오면 어디로든 전화를 했다. 오후 2~3시쯤 전화를 자주 받았다. "너 어디니" "나 지금 여기 어디있는거야"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센터에 있는 사람들과 자주 싸웠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학교에서 말썽을 일으킨 아이의 엄마처럼, 부리나케 센터로 가서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고 아빠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병원을 바꿔보고, 임상에도 참여해봤다. 차도는 없었다. 계속 나빠졌다.
 최근 엄마의 상태까지 극도로 나빠졌고 오늘 그게 터져버렸다. 엄마는 센터에서 극도로 난폭해진 아빠를 전화로 겨우 진정시킨 뒤 집에 데리고 왔다. 느낌이 좋지 않아 전화를 했더니 울고 있었다.옆에 있던 아빠는, '중증'의 젊은 치매 환자인 아빠는,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다가 내 전화를 받았고, 1초 정도, 정신이 돌아왔는지 미안하다고 했다.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미치도록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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