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

재료공학부

방바닥 2006. 12. 9. 15:58

99년 부터였던가. 대학에 학부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원래의 취지는 점수에 맞춰 과를 지원하는 폐단을 없애고 1년 동안 폭 넓은 학습을 통해 2학년 부터 자신이 원하는, 공부하고 싶은 '과'를 선택하자, 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5,6년이 지난 지금, 은근슬쩍, 자취를 감추고 있다. 역시나, 취업이 잘 된다는 전기 전자과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몰리는 현상이 나타났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과에 지원을 했다가 떨어지는 학생들도 왕왕 생기는 것을 보면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선!' 1학년 때 부터 무조건 공부, 공부, 공부를 해라, 가 주된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대학교 신입생이 되었던 02년도. 물리, 화학, 미적의 일반 시리즈 3차의 첫 시험에서 절망 한 뒤 '놀자!' 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1년동안, 정말 실컷 놀았다. 그래도 나중을 생각해 교양을 모두 살려 놓은 것은(재수강 한계인 B까지를 우리는 살렸다고 표현한다) 지금 생각해도 참 기특한데 결국, 공대내에서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과는 제한되었다(전자, 산공을 제외한 모든 과가 지원 가능했다).
어차피 전자 전기쪽의 회로는 오지게 싫어하니까 빼고, 역학, 토크 이런거 열라 싫어하니까 토목과 기계도 빼고, 화학2를 오지게도 못하니 화공과도 빼고, 건축물 세우는 것도 마음에 내키지 않아 건축도 빼고 남은 것은 산업공학과와 재료공학부. 이상시리 산업공학부는 왠지 공대가 아닌 것 같고, 취업이 잘 안될 것 같아(어차피 학점도 안됐다) 자신있게 선택한 것이 바로 '재료공학부', 지금의 신소재공학부이다. 딴에는 미래를 생각하자, 라는 비전있는 생각으로 '앞으로 10년 있으면 재료가 뜬다!' 라는 부푼 마음을 안고 지원을 했는데 비인기 학과이다 보니 미달로 당연히 합격(!?). 그렇게 재료공학도로서의 첫 걸음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이 내가 싫어하는 것들에 대한 반대급부의 성격이 강하고 진지한 고민 없이출발하다보니 고생길은 당연한 것이었다. 어찌저찌 2학년 첫 전공학기를 나름대로 선방하고 복학을 했는데 이거 뭐 말이 안된다. 열심히 하지 않은 나의 탓도 물론 있겠지만 어렵고 빡빡한 전공 수업과 시험 일정,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난해한 텍스트와 식 들, 과에 내 몸을 묻고 내가 먹고 살 길을 찾자! 라는 마인드가 아닌 이상,  평범한 내 머리로는 따라가기가 벅찼다. 복학 2학기 만에 타과의 에이스가 된 절친한 친구 한 명은 2학기 복학 뒤 단 하루도 공부를 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열심이다. 반면 전공과는 다소 거리가 먼 것들에 주억거리며 찔끔찔끔, 들락날락 하는 나로서는 전공 공부에만 올인하고 있으면 무언가 부족하고, 이상시리 뒤떨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모두 잘 하는 사람도 언제나 존재한다. 모임에서 알게 된 S대 후배 한 명은 전공 공부도 최고, 그 밖의 공부도 최고. 마냥 부러운 나는, 그저 나의 게으름을 탓할 수 밖에.

어찌되었던, 내가 과 공부를 좋아하건 말건, 잘 하건 말건, 사회에 나가 나의 꽁무니를 따라다닐 '재료공학부'. 한 교수님의 '과 전망이 우울하다' 라는 말에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말로 흘려 듣는 것을 보면 재료과에 몸을 묻을 만큼의 열성분자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여기서 벗어날 수도 없는 일.
그래서, 이런 게시판을 만들었다. 나의 전공, 재료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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