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축제

방바닥 2008. 5. 21. 03:05
 학교가 떠들석하다. 축제기간인가 보다. 작년까지만 해도 과도관 의자에서 엉덩이를 일으키는 시간이 거진 오후 11시 였기에 느즈막한 시간에 교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쉽사리 알 수 있었지만 수업이 끝나자마자 칼같이 방으로 귀성하는 요즘엔 당췌랄리 알수가 없다.
 최종면접을 마치고 받은 면접비로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막창에 소주 두 잔을 하는 사이 과 주점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것들, 이제는 내게 귀뜸도 해주지 않는다. 어찌저찌 하루 종일 입고 있어서 후질그레해진 양복을 입고 주점을 찾아가 07, 08 신입생들과 그들의 친구와 함께 어울리기는 개뿔, 졸업하고 취업한 형님과 과 대학원 선배들과 함께 우중충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며 맥주를 비웠다. 마치 흰색 바둑알이 가득차 있는 바둑판 구석에 흑색 바둑알 몇 개가 지들 마음대로 널부러져 있다는 느낌이랄까. 앞, 뒤, 좌, 우에서는 화기애애한 지저귐이 울려퍼지고 있는데 '아씨, 내일 출근하기 싫다' '다음주 면접 결과 어떻게 될까요 덜덜덜' '야, 4시 반 방향 어떠냐, 괜찮지 않냐?' '나이트 콜?' 과 같은 누리끼리한 이야기가 주된 대화 내용이었으니 불청객도 이런 불청객이 따로 없지 않았나 싶다.
 게으름 탓에 미루어 두었던 토론회 및 포럼 관련 정리 탓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부랴부랴, 하루 왠종일 방구석에 쳐박혀 있는데 둥둥둥 북소리가 들린다. 아마 애기능 농구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농악대의 화려한 쑈이리라. 캄캄한 밤하늘에 하얗게, 밝게 빛나고 있을 천막이 그립다. 테이블 사이사이를 뛰어 다니며 인사하고 주문 받고 느즈막한 새벽녘이 되어서야 준비를 했던 학생회 친구들끼리 모여앉아 소주 한 잔에 남은 안주로 휘포를 풀었던 그 때가 그립다. 많이 먹은 나이에 체했을 법도 하지만 이 나이 먹도록 꿋꿋히 해낸 FM 도 그립고 녹지운동장에서 미친듯이 날뛰었던 응원의 함성 역시 그립다.
 요즘 주변인들로부터 왜이리 우울해졌냐, 라는 소리를 자주 듣곤 하는데 한 달 남은 대학생활의 자유가 그리워질 것임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일 듯도 하다. 이제 준사회인에서, 준성인에서, 리얼 사회로의 진출 준비를, 개뿔 예전보다 나아진 것은 없지만 그래도 '성인' 이라는 그럴듯한 명찰을 달아야 함을 깨닫고 있기 때문일테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축제 기간이 기쁠수만은 없다는 것.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무언가 정리를 해야 한다는 벅찬 업무가 내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래서 그렇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늙음  (0) 2008.06.03
여행  (0) 2008.05.22
마지막 학기  (4) 2008.05.20
개고기  (2) 2008.05.19
비 오는 날  (0) 2008.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