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를 좀처럼 입지 않는다. 좀처럼이 아니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거의 입은 일이 없고 밖에 나갈 일이 생기면 아스팔트의 지열이 내 신발을 뚫고 들어오더라도 언제나 긴 면바지를 선호하곤 했다. 이유는 별거 없다. 다리가 굵고 털이 많기 때문이다. 무더위가 막 시작됐던 지난주 쯔음. 친구가 내 자취방에 임시로 맡겨 놓은 짐들 사이로 반바지가 보였다. 어두 컴컴한 밤에 나갈일이 있었기에 볼 사람도 없겠다, 그냥 입고 나간 반바지의 시원함을, 무려 5년 만에 깨달았다. 아. 나는 왜 이런 황홀한 세상을 잊고 살았을까.
나이의 힘일까. 20살때는 털이 많은 내 신체가 '결함'(?)을 안고 있다고 여겼는데 이제는 그 '시원함'이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압도해 버렸다. 그 후로 일주일. 나의 긴긴 면바지는 어느덧 장농 속으로 모두 쳐박혔고 반바지에 쓰레빠를 질질 끌으며 더운 여름을 이겨내는 또 하나의 해법을 찾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