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없애려 인종차별 표현?
미 명문대학 프린스턴대에서 인종차별 논란이 일어났다고 한다. SAT(미 대입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중국계 학생의 프린스턴대 입학이 거절되자 프린스턴대의 대학신문은 이를 풍자하기 위해 "도대체 너희 색깔없는 애들(백인)은 뭐가 문제니?" 등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만점 받은 학생이 떨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진상 조사 소송을 걸었다 하니 곧 밝혀질 일이겠지만 학보사의 인종차별 희화화 칼럼과, 그리고 그것이 되레 인종 간 대립을 부각시킨다며 "깊은 생각 없이 쓴 모욕적인 글" 이라는 학교측의 반응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로 알려진 홍세화씨가 "똘레랑스는 역사적으로 앵똘레랑스에 대해 단호히 반대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똘레랑스란 앵 똘레랑스에 대해서 단호히 반대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듯이 인종차별을 반대하며 이에 맞서기로 한 그들의 생각에 동의한다. "광신주의자의 열성이 수치스러운 것이라면 지혜를 가진 사람이 열성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신중해야 하지만 소극적이어선 안된다" 라는 볼테르의 말처럼 인종차별 의식이 공공연히 퍼져있다는 서구 사회의(안가봤기에 순전히 들은 내용임) 부조리한 부분에 대한 정면 돌파는 평가할 일이다. 굳이 이쯤에서 '방법론' 이라는 용어를 들먹이고 싶지는 않지만 논설 몇 편, 작문 몇 편, 대자보 몇 개를 통한 알림성 방법 보다는 이처럼 큰 이슈화(지구 반대편의 나까지 알고 있으니!)를 통해 전혀 생각지 않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보다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물론 약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학은 어떨까. 삼성에 목매달고 기업이 지어주는 건물에 아무 비판 없이 감사하며 캠퍼스 정문에 편의점과 보쌈집이 버젓히 간판을 걸고 있는 고려대학교의 경우를 보면 언제나 이런 '방법론' 따위가 문제가 된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명예철학박사 수여식때 가장 많이 나왔던 말이 "너희들 생각 옳다. 그런데 왜 방법이 그 따위냐" 였고 보건대 통폐합 및 교직원 감금(?)사태때 역시 "너의들 할 말 있으면 하고 사라지면 되지 왜 그따위 방법을 쓰냐" 라는 말이 학내 전반을 차지했다. 통폐합 및 교직원 감금 사태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서울 특별시 4년제 대학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폐합된 학교의 학생을, 그것도 전문대 학생을 어찌 우리와 같은 4년제로 묶으려 하느냐" 라며 반발했기에 그렇다 치더라도 의외로 삼성 이건희 회장에 대한 명예철학박사 수여식 사건 때는 "물론 삼성의 무노조 정책과 노동자 탄압은 잘못된 것이다" 라는 말이 간간히 보였다. 즉 시위를 주도한 이들이 알리려고 했던 사안에 대한 문제는 많은 이들 역시 인식하고 있던 문제였다. 하지만 만약 시위를 주도했던 이들이 방법론을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의 말처럼 피켓만 든 채 입 꽉 다물고 시위를 했더라면 과연 그들의 주장을 제대로 알릴 수 있었을까. 교내 기관지화 되어가는 고대신문에서는 아마 "삼성 이건희 회장에 대한 명예 철학 박사 수여식이 성대하게 열렸... 솰라솰라.. 레드 카펫을 걸어 갔으며 오케스트라는 솰라솰라....(한 3, 40줄).... 이건희 회장은 무어무어라고 말했다. 한편, 행사장 근처에서는 삼성 이건희 회장에 대한 명예 철학 박사 수여를 반대하는 학생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끝-" 으로 마무리 됐을 것이고 나처럼 당시 학교를 휴학하거나 멀리 떨어져 있던 학생 같은 경우에는 관련 문제에 대한 인식은 제쳐두고 단지 철학박사를 받았다, 라는 사실 정보만을 알고 넘어갔을 것이다.
이처럼 강자에 의해 차별을 받는, 혹은 억압 받는 약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냉담하기 그지없다. 자신 역시 불합리한 의식 속에서 약자로 차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 정도 차별은 당연한 것이다, 라는 낯뜨거운 생각들이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콕 하고 박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 사회를 비판하고, 그 사회의 수준을 나타낸다는 대학 내에서조차 이 정도니 사회로 나오면 말 해 무엇할까.
다소 과격한 방법일지 모르지만 한국처럼 조중동과 같은 언론들이 사회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시점에서 약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알리는 일은 쉽지 않다. 거대 기업 같은 수많은 강자들의 '알고 아파'와 같은 엄살에도 금방 나라가 망할 것 처럼 '저들을 풀어주라!' 고 외치는 언론들은 하지만 조명 받지 못하는 이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때문에 프린스턴대 학보사 편집진의 "인종차별을 위한 인종차별" 에대해서, 비록 지구 반대편에 있는 평범한 대학생이지만 응원의 목소리를 하나 추가하고 싶다. 그들의 문제 제기로 인해 평소 인종차별에 대해 아무런 의식, 생각없이 살아가던 많은 이들이 한 번 쯤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볼 시간을 갖을 수 있다면, 그들의 과격한(!) 방법론은 충분한 의미를 가지며 성공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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