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문화제에 참석했다. 즐겁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환하게 웃으며 자유발언을 듣고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아이들의 재롱도 보였고 양복을 곱게 차려 입고 나온 30대 중후반의 무리들도 꽤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벌의 어르신들도 계셨고 앳된 중고등학생들의 야무진 목소리도 귀를 즐겁게 했다. 내 또래의 대학생으로 보이는 이들 역시 서너명씩 짝을 이뤄 이름모를 시민들이 외치는 소리에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도 꽤 있었다. 그들의 손에도 역시 촛불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행진' 을 했다. 을지로입구를 지나 명동으로 향했다. '고시철회 협상무효' '이명박은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길가던 시민들이 걸음을 멈췄고 '민주시민 함께해요' 의 외침이 뒤를 이었다. 어떤 분들은 "차가 들어올려고 하니까 조금만 빨리 가주세요" 라며 웃으며 이야기했고 또 어떤 분은 "예끼 이놈의 새끼들아" 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명동으로 들어섰다. 손에는 촛불과 다양한 문구가 적힌 종이 한 장만이 달랑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박수쳤고 외쳤고 그리고 노래 불렀다. 버스를 타고 있는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었고 건물 2, 3층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어떤 이들은 박수를 치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기도 했다. 잠시 우왕좌왕했다. 어디로 가야하나. 서울역쪽을 외치는 사람도 있었고 명동을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대세가 명동이었다. 다시 유턴을 했다가 뒤에 있는 무리와 합류했다. "함께해요" 를 외치며 또 다시 우리는 구호를 외치고 종이를 흔들었다. 폭력집회가 아닌, 지극히도 평화로운 집회였다. 즐거웠다. 다양한 층의 모든 이들이 함께 했고 어떤 이들은 물을 나눠주기도, 박카스를 돌려마시기도 했다. 촛불이 꺼지면 서로의 촛불을 다시 옮기며 소리쳤다.
4차선 도로를 넓게 차로 둘러막은 전경들이 보였다. 방패를 들고 거리를 좁혀왔다. "U턴" 을 외쳤다. 명동 거리 안으로 들어섰다. 행진하는 인원은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명동 거리를 지날때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졌다. 박수를 치고 합류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을지로입구 쪽으로 나가던 중 또 다시 전경들이 앞을 가로 막았다. 살짝 무서웠다. 누군가 "명동성당" 을 외쳤다. 뒤로 돌아 가던 중 전투모(?)를 쓰고 방패로 무장한 전경들이 온 길을 막고 짝 맞추어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소리쳤다. "뛰어요!" 솔직히, 다리가 후들거렸다. 터벅터벅 군화소리와 검은 그들의 전진이 너무도 무서웠다. 어려 보이는 여학생들은 주변 상점으로 뛰어 들어가기도 했다. 잠깐 뛰다가 다시 안정을 찾았다. 명동역 6번 출구 앞에서 다시 망설였다. 맨 앞에서 우리를 이끌던 어떤 이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를 이야기하자고 했고 자리에 앉기를 유도했으나 "여기서 멈추면 포위된다" 며 어떤 이들은 목청을 높였다. 그렇게 어떤이는 앉고 어떤이는 서서 구호를 외쳤다. 아까 보았던 그 무서운 전경들이 바짝 다가와 있었다. 무서웠지만, 이상시리 열이 받았다. 우리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라곤 다 타버린 촛불과 종이 쪼가리가 전부였거늘 완전무장한 검은 모습이 흡사 악마 같기도 했다. 발걸음을 뒤로 돌리려다 앞으로 나갔다. 어떤 이들은 그들과 대치해 마주보며 서 있었고 그 주변을 많은 시민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구호가 시작되었다. "폭력경찰 물러가라"
곧 그들은 물러갔다. 환호했다. 허나 이번엔 우리의 앞을 막아섰다. 대열은 많이 흐트러져 있었다. 어떤 이들은 시청으로 간다고도 했고 서울역으로 간다고도 했다. 홀로 대열에 껴 있었던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어디로 가야하나. 잠시 우리의 길을 막은 전경들 앞에 섰다. 앳되 보이는 그들 역시 우리의 한 가족이거늘. 담배 한 대 태우며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며 많은 생각을 했다. 성과가 있을까. 귀를 막고 배후세력에 농락당했다며, 괴담에 속았다며 시위에 참가한 국민들을 물로보는 윗대가리 정부놈들에게 이런 우리의 시위가 통할 수 있을까. 더 많은 인원이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조금 더 과격해야 하는 것일까(이건 그놈들에게 반대논리를 제공할 수 있으니 별로다). 사회적 파장을 고려, 아예 연예인들이 단체로 시위에 함께 할 순 없을까. 교수님들, 방송인들, 기자들, 이 사회의 모든 지식인들이 함께 하면 그들은 듣는 척이라도 할까.
11시 40분쯤, 홀로 다시 청계광장으로 걸었다. 무기력했다. 언제까지 국민들은 이런 피곤을 감수하며 거리로 뛰쳐 나와야 하는걸까. 결국 이렇게, 끝나는 것은 아닐까.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을 지날때면 모두 시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청계광장에 다다랐을 때 쯤, 누군가 길가는 이에게 물었다. "시위대는 다들 어디 있나요?" "시청역에 있다고도 하고 서울역에 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시청으로 향하는 듯 했다. 청계광장은 조용했다. 홀로 앉아 또 담배를 펴 대고 있는데 뒤쪽으로 전경들이 소리를 지르며 도로를 가로질러 뛰는 것이 보였다. 일이 났구나. 순간 청계광장에 있던 몇 몇 무리들은 전경의 자취를 쫓아 뛰기 시작했고 멍하니 있던 나는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택시 탈 힘은 없었지만 청계천을 따라 안암동까지 걸어올 기력은 있었나보다.
집에 들어와 상황을 보니 시청에 있던 105명이 모두 연행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어떤 이는 "이 시대가 이걸 원하면 타야죠" 라는 명언을 남기며 자진해서 닭장차에 올라탔다고 한다. 미안했다. 부끄러웠다. 그 자리에서 함께 그들의 손을 잡지 못한 나 자신이 창피했다. 허나, 내게 그럴 용기라도 있었을까. 자신이 없다.
배후세력을 이야기한다. 청계광장 옆에 커다란 빌딩의 좆선일보 건물에서는 2002년 월드컵에서 박지성의 골 장면이 연이어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시위자들에게 배후세력은 있다. 한 고등학생이 이야기했듯이, 바로 우리의 양심이며 우리의 가족이고 우리의 친구들이고 우리의 이웃이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이 자리에 나왔으며 때문에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을 수 있었다. 그래서 시위가 즐거웠을게다.
국민들은 너무도 피곤하다. 먹고 살기 바쁘니 나랏살림은 좀 알아서 챙기라고 대표를 뽑아 놨더니 하는 짓거리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민주주의' 를 이야기하며 국민이 직접 나섰다. 빨갱이가 어딨고 좌파가 어딨는가. 쌍팔년도 논리를 들먹이는 그들, 그리고 그것이 아직도 먹히는 한국 사회.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너무도 불편하다. 힘들다. 바꿔보자고 다시 거리로 나온 이들의 행동이 그렇게 두려운가. 게릴라 시위가 어딨고 조종하는 세력이 누가 있단 말인가. 집회 참가해 봤어요? 안해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요. 엄청 즐거워. 엄청 평화로워.
교통이 막힌다고 택시가 영업을 할 수 없다고, 집에 늦게 들어간다고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친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나 같으면, 30분, 1시간 지체하고 밥상에 올라오는 쇠고기를 안전하게 먹을란다. 30분 빨리 가자고 다 퍼준, 위험성에 관한 과학적 사실이 아직도 혼란스러운 쇠고기를 먹겠는가. 소탐대실이다.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가.
두렵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며 자발적으로 뛰쳐나온 많은 이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소름이 끼칠정도로 기뻤고 그래서인지 비록 홀로 돌아다녔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다. 이분의 말마따나, 오늘 집회는 시민들의 승리였다.
08년 5월 28일 대한민국의 실상
시민들이 자진 연행되고 있습니다
27일 거리 행진 동영상
그리고 '행진' 을 했다. 을지로입구를 지나 명동으로 향했다. '고시철회 협상무효' '이명박은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길가던 시민들이 걸음을 멈췄고 '민주시민 함께해요' 의 외침이 뒤를 이었다. 어떤 분들은 "차가 들어올려고 하니까 조금만 빨리 가주세요" 라며 웃으며 이야기했고 또 어떤 분은 "예끼 이놈의 새끼들아" 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명동으로 들어섰다. 손에는 촛불과 다양한 문구가 적힌 종이 한 장만이 달랑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박수쳤고 외쳤고 그리고 노래 불렀다. 버스를 타고 있는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었고 건물 2, 3층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어떤 이들은 박수를 치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기도 했다. 잠시 우왕좌왕했다. 어디로 가야하나. 서울역쪽을 외치는 사람도 있었고 명동을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대세가 명동이었다. 다시 유턴을 했다가 뒤에 있는 무리와 합류했다. "함께해요" 를 외치며 또 다시 우리는 구호를 외치고 종이를 흔들었다. 폭력집회가 아닌, 지극히도 평화로운 집회였다. 즐거웠다. 다양한 층의 모든 이들이 함께 했고 어떤 이들은 물을 나눠주기도, 박카스를 돌려마시기도 했다. 촛불이 꺼지면 서로의 촛불을 다시 옮기며 소리쳤다.
4차선 도로를 넓게 차로 둘러막은 전경들이 보였다. 방패를 들고 거리를 좁혀왔다. "U턴" 을 외쳤다. 명동 거리 안으로 들어섰다. 행진하는 인원은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명동 거리를 지날때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졌다. 박수를 치고 합류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을지로입구 쪽으로 나가던 중 또 다시 전경들이 앞을 가로 막았다. 살짝 무서웠다. 누군가 "명동성당" 을 외쳤다. 뒤로 돌아 가던 중 전투모(?)를 쓰고 방패로 무장한 전경들이 온 길을 막고 짝 맞추어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소리쳤다. "뛰어요!" 솔직히, 다리가 후들거렸다. 터벅터벅 군화소리와 검은 그들의 전진이 너무도 무서웠다. 어려 보이는 여학생들은 주변 상점으로 뛰어 들어가기도 했다. 잠깐 뛰다가 다시 안정을 찾았다. 명동역 6번 출구 앞에서 다시 망설였다. 맨 앞에서 우리를 이끌던 어떤 이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를 이야기하자고 했고 자리에 앉기를 유도했으나 "여기서 멈추면 포위된다" 며 어떤 이들은 목청을 높였다. 그렇게 어떤이는 앉고 어떤이는 서서 구호를 외쳤다. 아까 보았던 그 무서운 전경들이 바짝 다가와 있었다. 무서웠지만, 이상시리 열이 받았다. 우리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라곤 다 타버린 촛불과 종이 쪼가리가 전부였거늘 완전무장한 검은 모습이 흡사 악마 같기도 했다. 발걸음을 뒤로 돌리려다 앞으로 나갔다. 어떤 이들은 그들과 대치해 마주보며 서 있었고 그 주변을 많은 시민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구호가 시작되었다. "폭력경찰 물러가라"
곧 그들은 물러갔다. 환호했다. 허나 이번엔 우리의 앞을 막아섰다. 대열은 많이 흐트러져 있었다. 어떤 이들은 시청으로 간다고도 했고 서울역으로 간다고도 했다. 홀로 대열에 껴 있었던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어디로 가야하나. 잠시 우리의 길을 막은 전경들 앞에 섰다. 앳되 보이는 그들 역시 우리의 한 가족이거늘. 담배 한 대 태우며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며 많은 생각을 했다. 성과가 있을까. 귀를 막고 배후세력에 농락당했다며, 괴담에 속았다며 시위에 참가한 국민들을 물로보는 윗대가리 정부놈들에게 이런 우리의 시위가 통할 수 있을까. 더 많은 인원이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조금 더 과격해야 하는 것일까(이건 그놈들에게 반대논리를 제공할 수 있으니 별로다). 사회적 파장을 고려, 아예 연예인들이 단체로 시위에 함께 할 순 없을까. 교수님들, 방송인들, 기자들, 이 사회의 모든 지식인들이 함께 하면 그들은 듣는 척이라도 할까.
11시 40분쯤, 홀로 다시 청계광장으로 걸었다. 무기력했다. 언제까지 국민들은 이런 피곤을 감수하며 거리로 뛰쳐 나와야 하는걸까. 결국 이렇게, 끝나는 것은 아닐까.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을 지날때면 모두 시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청계광장에 다다랐을 때 쯤, 누군가 길가는 이에게 물었다. "시위대는 다들 어디 있나요?" "시청역에 있다고도 하고 서울역에 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시청으로 향하는 듯 했다. 청계광장은 조용했다. 홀로 앉아 또 담배를 펴 대고 있는데 뒤쪽으로 전경들이 소리를 지르며 도로를 가로질러 뛰는 것이 보였다. 일이 났구나. 순간 청계광장에 있던 몇 몇 무리들은 전경의 자취를 쫓아 뛰기 시작했고 멍하니 있던 나는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택시 탈 힘은 없었지만 청계천을 따라 안암동까지 걸어올 기력은 있었나보다.
집에 들어와 상황을 보니 시청에 있던 105명이 모두 연행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어떤 이는 "이 시대가 이걸 원하면 타야죠" 라는 명언을 남기며 자진해서 닭장차에 올라탔다고 한다. 미안했다. 부끄러웠다. 그 자리에서 함께 그들의 손을 잡지 못한 나 자신이 창피했다. 허나, 내게 그럴 용기라도 있었을까. 자신이 없다.
배후세력을 이야기한다. 청계광장 옆에 커다란 빌딩의 좆선일보 건물에서는 2002년 월드컵에서 박지성의 골 장면이 연이어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시위자들에게 배후세력은 있다. 한 고등학생이 이야기했듯이, 바로 우리의 양심이며 우리의 가족이고 우리의 친구들이고 우리의 이웃이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이 자리에 나왔으며 때문에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을 수 있었다. 그래서 시위가 즐거웠을게다.
국민들은 너무도 피곤하다. 먹고 살기 바쁘니 나랏살림은 좀 알아서 챙기라고 대표를 뽑아 놨더니 하는 짓거리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민주주의' 를 이야기하며 국민이 직접 나섰다. 빨갱이가 어딨고 좌파가 어딨는가. 쌍팔년도 논리를 들먹이는 그들, 그리고 그것이 아직도 먹히는 한국 사회.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너무도 불편하다. 힘들다. 바꿔보자고 다시 거리로 나온 이들의 행동이 그렇게 두려운가. 게릴라 시위가 어딨고 조종하는 세력이 누가 있단 말인가. 집회 참가해 봤어요? 안해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요. 엄청 즐거워. 엄청 평화로워.
교통이 막힌다고 택시가 영업을 할 수 없다고, 집에 늦게 들어간다고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친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나 같으면, 30분, 1시간 지체하고 밥상에 올라오는 쇠고기를 안전하게 먹을란다. 30분 빨리 가자고 다 퍼준, 위험성에 관한 과학적 사실이 아직도 혼란스러운 쇠고기를 먹겠는가. 소탐대실이다.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가.
두렵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며 자발적으로 뛰쳐나온 많은 이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소름이 끼칠정도로 기뻤고 그래서인지 비록 홀로 돌아다녔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다. 이분의 말마따나, 오늘 집회는 시민들의 승리였다.
08년 5월 28일 대한민국의 실상
시민들이 자진 연행되고 있습니다
27일 거리 행진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