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번 생일을 맞을 때 마다 부끄러움과 쑥스러움에 어거지로 몸을 비비꼬곤 했었는데 20대의 마지막 생일이라는 상징성을 운운하기엔 아직도 너무 부족한 것이 많은 인간이다. 열심히 사는 것은 그렇다쳐도, 삶에 대한 '철학' 이 부족한 것이 너무도 가슴 아프다(응?). 김대중 자서전을 읽던 도중 생일을 맞았다. 아, 어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김대중 전대통령을 똑같이 따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요즘 느끼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얼마 전 꽤 오랜 생각을 한 적이 있었지만 글로 정리할 정도의 정리가 안되었기에 일단 패스. 좀 논란이 될 듯한 부분이기에.
여튼, 생일 날 아침 누나의 신경질 적인 목소리를 참지 못하고 대놓고 소리를 박박 질러 댔다가 탁구 치듯 기깔나게 오간 누나와 나의 고성으로 엄마까지 참전, 아빠가 아침 일찍 나가셨던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엄마와도 박박 벅벅 한참을 싸우고 "악!" 소리를 지르고서는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솔직히 스터디 시간이 다 되어서 나가야 하기도 했지만 좀 이른 시간이었다. 샤워를 안하고 뛰쳐 나왔으면 조금 더 멋있었을걸, 하는 값싼 생각은 그냥 버리고-_-
맥도널드에 가서 더블버거였던가, 시켰더니 3600원이란다. 아니 왜요? 라는 질문에 "런치할인이요" 라며 눈으로는 벌써 뒷손님을 바라보고 있던 매장 알바 생이 그렇게 이뻐 보일 수 없었다. 5600원짜리 였는데. 넓은 신촌의 맥도날드 지하 1층에서 혼자 꾸역꾸역 햄버거를 쳐먹고 3시간 동안 스터디를 한 뒤 인재제일 식구들을 만났다. 아 즐거운 친구들. 생일을 알고 있던 16기 정원이에게 제발 말하지 말자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기어이 케익을 들고 나타났다. 또 다시 너무 쑥스러운 마음에 몸둘바를 몰라 허둥지둥, 그런데 벌주는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던 것이 정말 쓰레기 똥차 맛이 났다. 두 모금 마시고 나니 헛구역질이 주작대로를 따라 올라오는 기분이더만(응?). 그렇게 밤새 부어라 마셔라 술을 마시고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강남역에서 38000원을 내고 택시를 탔다.
월요일엔, 석웅이와 태안을 갔다. 능글맞기로는 세계 최고 김석웅은 대하 축제의 경험을 살려 아주머니와 열심히 흥정을 하더라. 멋지다 김석웅. 생일이라고 문자도 못보냈네, 하면서 대하를 쐈다. 아쉽게도 대하를 앞에 두고 차를 가져온 김석웅씨. 결국엔 안산으로 와서, 차를 대놓고, 다시 밖으로 나와서, 오뎅바를 가서, 술을 마셨다-_- 전날 과음도 있었기에 적당히. 이 날 본 석웅이의 모습에서 배울 점이 참 많았다. 이건 조만간 다른 포스팅으로.
화요일, 수요일 할아버지댁과 외숙모댁을 다녀오고 목요일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산소에 다녀 온 뒤에 집에서 뒹굴다가 고려대학교 화공과 절정 꽃미남 전정환과 함께 당구를 치고 곱창을 먹고 술을 마셨다. 어색한 조화, 강민이를 불러 정말 어색한 대화를 나누고 전정환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책상과 침대 사이 작은 공간이 있는데 전정환은 그곳을 고집했다. 어울리더라. 딱 네 관이 그 모양일거다. 전정환이 내게 해준 대화도 유익했다. 역시 조만간 다른 포스팅으로.
금요일, 학원을 갔다가 yehs 번개에 참석했다. 어린 친구들의 개그에 적응하지 못하고 선아누나가 올 때 하소연했다. 누나, 제가 이렇게 말 안하고 오래 있던거 본 적 있어요? 선아 누나의 열렬한 조언 속에 마음을 놓이고 술집을 옮겨 맥주를 마시던 중, 갑자기 들려오는 생일 축하 노래와 케익, 그리고 꼬깔모자. 아, 나 정말 고마워서, 또 그리고 부끄러워서 몸을 열 바퀴는 더 꼰 듯 하다. 그리고 생일주, 담뱃재가 송송 떠 다니는 맑고 고운 생일주를 코를 막고 원샷. 일요일, 인재제일 친구들이 만들어 준 것 보다 역겨운 향이 덜 해서 먹을 만했다. 소화 되고 트름이 나오는데 그 향 때문에 '웩' 하고 올라왔지만 애써 뱃속으로 들어간 음식물을 뱉어 내지는 않았다. 고마웠다. 다음주 관영이? 넌 죽었다. 난 이제 코딱지 파고 침 뱉을거야.
토요일, 아침에 늦었다. 제길. 영어 학원을 못갔다! 엄마도 깜짝, 나도 깜짝. 결국 영어 스터디만 하고 열심히 수능을 준비하고 있는 사촌 동생 윤원이를 만나러 갔다. 전화기가 꺼져 있어서 약간 당황했지만 곧 대성학원 근처 스타벅스에 똬리를 틀고 앉아 일요일에 있을 스터디 준비를 했다. 난 분명 '아이스' 를 시킨 것 같은데 뜨거운 커피가 나와서 당황했던 찰나, "삼촌, 오늘 안될것 같아요" 라는 문자에 급 당황. 결국 스타벅스에 홀로 앉아 두꺼운 책 펼쳐 놓고 펜을 들고 앉아 살찐 허벅지로 잘 꽈지지도 않는 다리를 꽈 대며 된장질 작렬했다. 집에 와서 쉬려는데, 신이가 부른다. 석웅이도 왔다. 강민이도 왔다. 제길, 집에 들어오니 새벽 6시-_- 뭐지 이건.
추석 연휴, 생일과 비스무리하게 겹쳐 참 다양한 일을 겪었다. 많은 일이 있었고 차 안에서의 5시간 동안 4시간은 쳐 자고 1시간은 참 많은 고민을 했다. 뇌를 꺼내 장미꽃 접듯이 주름을 자잘자잘하게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싶었다.
여튼, 너무 고마웠다. 오늘 인터파크 도서 상품권을 이모티콘으로 보내 준 우리 인재제일 15기 부회장 혜경이의 선물까지. 내가 잘 태어났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생각은 하고 살자, 라는 마음으로 살아가기에 부끄러운 것이 많았는데 너무도 좋은 사람들 덕택에 용기가 생기고 힘이 솟는다. 아, 20대의 마지막 생일이었구나. 아니다, 괜히 상징성을 부여하지말자-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