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

필수교양 -공대생의 관점에서-

방바닥 2007. 1. 19. 14:47

학교에 입학한지 5년이 지났다. 군 입대 날짜가 어정쩡해 지면서 부득이하게 한 학기를 비어야 했고 열심히 놀던 1학년 시절의 자유에 대한 책임까지 더해 한 학기 더 다녀야 되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우울한 공대생이다. 복학을 하면서 매워야 하는 전공학점과 1학년 때 소홀했던 과목에 대한 재수강까지 겹치면서 복학 첫 학기는 "쌌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심각했다. 재수강 과목 역시 '일반 물리' '미적분학' 등의 기초과학 과목이 대부분이다 보니 전공과 맛깔나게 어우러지며 1년 내내, 머릿속은 온통 수학과 과학에 대한 공식과 사고들 뿐이었다.

 1학년 때 접했던 실용영어와 교양국어(사고와 표현)등의 필수교양이 그리워지는 것은 이쯤되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 일반사회로 끝났던 이과생들의 문과쪽 지식에 대한 욕구는 보다 폭넓은 지식을 배우리라 예상했던 대학에 들어와 무참히 사라지고 말았다. 전공관련교양인 일반물리, 미적분학, 일반화학을 제외하고는 터무니 없이 부족해 보이는 필수 교양이 그래서 더욱 애뜻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교양국어 시간에는 텍스트에 대한 전반적 이해와 한자의 독음, 영화를 보고 자신의 느낌을 적거나 주어진 문제에 주관적 답안을 제시하는 등 논술 역시 모범 답안으로 공부했던 우리 세대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어떤 주제에 대해 그 자리에서 작문을 하라는 과제가 떨어졌을 때도, 여기저기 주워 온 자료만을 머릿속에 나열할 뿐, 나만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용영어 시간은 수능 영어, 책상 영어에 입각해 맨투맨과 성문영어만을 팠던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비록 표현이 서투르고 손 짓, 발 짓 다 써가는 가난한(?) 의사소통으로 연명해 나갔지만 외국인들과 눈을 맞대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해 나가는 과정과 또 미력하지만 말하기, 듣기에 대한 약간의 자신감도 얻게 된 시간이었다. 하지만 교양은 그걸로 끝이었다. 빡빡한 커리큘럼의 전공 과목을 위해 2학년부터는 학점을 잘 주거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도 쉽게 패스할 수 있는 교양을 찾기 시작했다. '공대생이 전공만 공부하면 되지 뭐' 라는 생각은 공대 전체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으며 나 역시 이에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단편적인 지식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모기업의 '창조 경영' 역시 단순히 이공대적 사고만으로는 다다를 수 없다. 공대생들의 경우 부족한 인문학적 지식과 사고를 개개인의 독서를 통해 얻거나 학교 외의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접하려 노력하지만 일부분일 뿐, 대부분의 학생들은 전공 과목에 매달려 대학 4년을 흘려 보내기 일수다. 아인슈타인의 1300여개가 넘는 특허가 엄청난 독서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으며 사회로 진출한 많은 엔지니어들은 감성이 약한 공대생들의 마인드를 지적하며 이 책 저 책 가리지 말고 읽으라는 당부를 역시 잊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비록 필수교양이 갖고 있는 범위와 배움의 양이 적은 부분이라 하더라도 공대생들에게 있어서 그런 배움 자체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문과쪽 학생들의 경우 배우는 범위 자체가 많은 지식과 폭넓은 사고를 요구한다. 물론 공대 과목 역시 많은 지식과 깊은 사고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나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는 한계를 지적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한 예로 '고대문화'를 들 수 있는데 본교캠퍼스에서는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교지 '고대문화' 가 이공대 캠퍼스에서는 발간된 주가 끝날 때 까지도 캠퍼스 이 곳 저 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만큼 학생들의 관심은 전공 이외에는 관심을 두기 힘들 정도로 협소하며 이는 우스개 소리로 '공돌이' 라는 소리를 듣기에 안성맞춤이다.

 요즘 많은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인 "창의성 있는 인재" 역시 마찬가지다. 창의성 있는 인재란 빠르게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를 의미하는데 그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공대생의 경우 전공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다방면의 독서와 자신만의 철학,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으로 가미되어야만 한다.

 이런 의미에서 공대생들에 대한 전공 외 교양의 확보는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운영되는 커리큘럼의 경우 1학년 때만 듣고 난 뒤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 꾸준히 전공외 과목을 접할 수 있는 새로운 교과과정이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식의 경험을 보장하기 위해 전공 과목의 학점을 줄이는 등의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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