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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 그늘

통킹만 사건을 조작으로 베트남 전쟁을 일으켰던 미국. 그리고 이라크 전을 앞두고 '자유'와 '민주'를 들먹이며 한국의 파병을 요청했던 미국, 그 때나 지금이나 한미관계는 여전히 진보하지 않은 채 제자리 걸음만을 걷고 있는 듯 보인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태도 역시, 일절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흘러가고 있다. 한국은 베트남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했던가. 일본에게 그들의 사과를 요구하는 만큼, 우리의 뒤는 돌아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쪽에서는 피해자가 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가해자가 된 입장에서, 그 피해자들에게 우리 역시 일본과도 같은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는 않을까.

독서 2006.08.21

수해봉사활동

수해가 남긴 상처는 꽤나 깊었다. 산 중턱 곳곳에 무너져 내린 흔적들은 찢겨 너덜거리는 살점들처럼 깊은 생채기로 남아 있었다. 마을 운동장에는 산사태로 집이 무너진 사람들을 위한 컨테이너가 놓여 있었다. 황량한 모래벌판에 놓여진 허름한 파오같은 모습에서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틀 동안 전국에서 온 구호물품을 마을별로 분류하고 나눠주는 일을 맡았다. 처음 면사무소로 들어갔을 때 나를 반긴 것은, 할아버지벌 되는 분의 "제발 한 명만이라도" 라는 말과 공무원의 "사람이 부족해요" 라는 대화였다. 자원봉사를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아쉽게도 조금 깊은 곳이라 그런지 공급이 많이 부족해 보였다. 이틀 동안 꽤 많은 분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나 홀로 이곳저곳을 돌..

일상 2006.08.16

괴물

원씨 : 야, 괴물 내용이 뭐냐? 전씨 : 한강에 괴물이 나타나.. 원씨 : 지랄하네. 구라 좀 치지마. 이제 안믿어 너네말. 전씨 : ..... 야. 진짜야! 괴물이 딸을 잡아가. 그런데 걔가 전화를 해. 원씨 : 소설을 써라 소설을. 왜, 그래서 가족이 괴물을 찾아가? 훈훈한 가족영화겠네? 전씨 : 그래! 진짜라니까. 아 이새끼 내말 안믿네. 흐흐흐 원씨 : 봐, 너가 생각해도 웃기지? 작작 속여라. 나도 이제 세상 사는 법을 배웠어. 구라 치지마. 전씨 : ..... 나는 전씨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일상 2006.08.08

왜?

"왜?" 라는 물음을 건냈던 적.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 자신에게 처음으로 "왜?" 라는 질문을 했을 때는 성년의 날을 앞둔, 바로 그 해였다. 난생 처음, 이 세상에는 다양한 생각과 이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바로 그때, 나는 내 자신에게 "왜?" 라는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명료한 답이 떨어지지 않는다. 주변만을 빙빙 도는 듯한 내 자신에게 오늘도 나는 "왜" 라는 물음을 던져 보지만 여전히 흐릿하기만 하다.

일상 2006.08.08

집에 오는 길

언덕위 반지하 자취방을 나와서 나의 아침, 이삭토스트 골목을 옆으로 끼고 안암역으로 향한다 저멀리 참살이길이 보이고 참살이길을 건너기 전에 안암역으로 내려간다 로데오거리는 압구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1년 365일 만국기가 펄럭이는 로데오거리도 있다. 5년 전 쯤에 앞으로 5년 후에 이곳이 뜬다! 라는 말로 상가고 뭐고 엄청나게 들어선 걸로 아는데 5년 동안 파리 날리는 골목이다. 집 앞에 있는 안산천에 물고기가 나타났다. 기적같은 일이다.

기록 2006.08.08

반바지

반바지를 좀처럼 입지 않는다. 좀처럼이 아니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거의 입은 일이 없고 밖에 나갈 일이 생기면 아스팔트의 지열이 내 신발을 뚫고 들어오더라도 언제나 긴 면바지를 선호하곤 했다. 이유는 별거 없다. 다리가 굵고 털이 많기 때문이다. 무더위가 막 시작됐던 지난주 쯔음. 친구가 내 자취방에 임시로 맡겨 놓은 짐들 사이로 반바지가 보였다. 어두 컴컴한 밤에 나갈일이 있었기에 볼 사람도 없겠다, 그냥 입고 나간 반바지의 시원함을, 무려 5년 만에 깨달았다. 아. 나는 왜 이런 황홀한 세상을 잊고 살았을까. 나이의 힘일까. 20살때는 털이 많은 내 신체가 '결함'(?)을 안고 있다고 여겼는데 이제는 그 '시원함'이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압도해 버렸다. 그 후로 일주일. 나의 긴긴 면바지는 어느..

일상 2006.08.06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무엇일까요? 라는 물음을 받았을 때 "로미오와 줄리엣은 포함되지 않는다" 라는 것만 알아도 맞춘 것이나 다름없다, 라는 생각이 부끄러워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자그마한 책 한권을 얼른 집어 들었다. 정말 쪽팔린 이야기지만, 나는 4대 비극이 모두 "희곡"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25살이 된 여름에 알아 버렸다. 허나, 영미권 외국 소설가들이 지은 책을 읽을 때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은, 왜 이 글들이 "세계적인 소설" "아름다운 문장" 이라는 소리를 듣는지는, 영어와 문학적 마인드가 부족한 나로서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 하던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얌마! 소나기알지? 소나기 같은 것이 노벨 문학상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문학 소설이 되어야 하는거야. 호..

독서 2006.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