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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

대세라는 것이 있다. 옷을 입던간에, 과를 선택 하건간에, 읽을 책을 고를때도, 강의를 선택 할 때도,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이 대세에 기울기 마련인데 고려대학교 역시 다르지 않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발간한 후보별 정책 자료집을 살펴봤다. 건물의 입구 곳곳에 가지런히 쌓여 있는데 좀처럼 학우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애물딴지 마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기도 했다. 후보는 세 팀, 곧 선거도 다가오고 해서 첫 장 부터 살짝살짝 살펴보니 예상대로, 전 공대학생회장이자 공대공감대 출신이 후보로 떡하니 얼굴을 올려 놓고 있었다. '비운동권'을 기치로 내걸은 그 친구는 공약 곳곳에 '학생들은 운동권을 싫어한다. 나는 비운동권이다' 를 연발하며 정치운동을 배제한, 순수한 학우들을 위한 총학생..

딴지 2006.11.15

그날이 오니

그날이 오니 저는 과도관 1층 24시간 열람실로 달려가 앉아 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차례로 밟으며 열람실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그대로 데굴데굴 구르며 과도관 앞 잔디밭을 한 바퀴 돌았으며 곧장 하나스퀘어로 내려가 영풍문고의 책들을 한 번씩 들었다 놨습니다. 안암역으로 흘러 들어가 열차와 여유있는 달리기 시합도 했습니다. 물론 제가 이겼습니다. 삼각지에 내려서, 중앙역에 도착할 때 까지 저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지하철을 앞 뒤로 왔다갔다 반복했습니다. 내려서 집으로 오는 순간, 안산천의 물고기들이 제게 뻐끔거리며 무슨 말을 하는 듯 하여, 안산천의 물을 다 마셔 버렸습니다. 옆 단지의 아파트 한 채를 살짝 건드리니 도미노 현상처럼 모든 아파트들이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그런..

일상 2006.11.13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원씨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북악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중앙분수대가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학기가 끊어지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서관의 석탑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무슨 한이 남으리까 그날이 와사, 오호 그 날이 와서 과도관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글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기어 커다락 북을 만들어 둘처메고는 과도관 앞에 앞장을 서 공부를 방해하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키오스크를 꺼버리겠소이다. 해설 이 시에서 '그 날' 이란 좀처럼 끝나지 않는 공대생들의 시험이 끝나는 ..

일상 2006.11.13

비겁한 변명

공대 학생회장 후보 두 팀이 선거 유세 중이다. 한 명은 반 후배, 또 다른 한 명 역시 반 후배이자 고등학교 후배이기에 둘 모두에게 애정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만 같은 반 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을 나눠먹던 친구들이라 그런지 차별없는 노선이라 선거의 의미는 없다. 공약 역시 약속이나 한 듯 판에 박히게 똑같다. 마치 지방선거에 한나라당 후보 둘이 나왔다고나 할까. "학생들을 위한 학생회" 라는 모토로 나온 두 후보는 지난 4월, "교수를 감금" 했다가 쫒겨난 출교자들을 비난하는 성명에 열을 올렸고 쌩뚱맞게 4.18 선배님들을 들먹이며 부끄럽다고 울부짖으며 검은 옷을 입고 모였던 친구들이었다(아직도, 거기서 왜 4.18선배님들 이야기가 나오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 단언컨대, 선배님들은 당신들의 어리석고 짧은..

딴지 2006.11.06

세상

200여명이 내뿜는 이산화탄소에 취해 비틀거리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중간고사 기간이 무색한 공대의 시험기간은 이번 학기 역시 지나치지 않았다. 겨울 바람에 하나, 둘 떨어져 흩날리는 낙엽처럼 널부러진 책들과 연습장 사이에서 펜을 들고, 두꺼운 전공서적과 씨름하기를 2주일째. 시험이 바로 다음날 이거나 이틀 연속 이어질 경우에는 드래곤볼의 시간의 방에 들어간 것 마냥, 철저하게 고립된 외딴 섬으로 들어간 느낌이다. 물론 신문 역시 가방 속에 고이 모셔두고는 읽지 못한다. 아니, 시험에 대한 예의를 차리느라 부러 꺼내지 않는다. 시험이 끝나고 3일치의 신문을 찬찬히 펼치며 세상에 속해있음을, 그리고 나 역시 한 둘레에서 굴러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바삐 돌아가는 세상, 단 하루 사이에도 많은 일들이..

일상 2006.11.02

집에 오는 길

빗방울이 약해진 틈을 타서 가방을 챙겼다. 먼 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를 맞고 갈 정도의 거리는 아니었기에 평소보다는 약간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자리를 반납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3개가 끝이 났고 남은 것은 세 개. 비록 세 개의 시험이 모두 끝나는 주, 그 다음주 부터 다시금 2차 시험이 뻐끔거리는 어항 속 붕어 마냥 아가리를 벌리고 있긴 하겠지만 당장 발등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불을 끈다는 생각 만으로도 잠시 설레고 심지어 기쁘기까지 하다. 후드티의 모자를 뒤집어 쓰고 음악을 들으며 걸었다. 시험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문과생들은 비가 오는데도, 이 늦은 시각까지도 삼삼오오 휘청거린다. 그나마 나는 낫다. 화공과는 이제 시험이 시작이다. 노래 한 곡을 들으면 집에 도착한다. 터벅터벅. 하루의 마감..

일상 2006.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