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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날이 나긋나긋 풀리니 점심 시간이 끝난 오후 사무실 공기가 잡아 먹듯이 덤빈다. 어깨가 묵직 묵직 거리는게 거울로 날 비춰보면 오싹한 처녀 귀신이 올라 타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장미란도 들기 힘들다는 눈꺼풀의 내리막 향연에 기를 쓰고 버티다가 커피 한 잔 하러 잠시 휴게실로 내려왔다.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 또 날 유혹한다. 조지아 커피. 광고의 효과가 무서운게 왠지 조지아 커피를 한 캔 따 마시는 순간 고메즈 같은 미녀가 쓰윽 하고 나타나 귓 바람을 불며 "잠 깨 이새끼야" 하고 속삭여 줄것만 같다. 결국 300원짜리 레츠비를 놔두고 500원 넣고 조지아 한 캔 뽑아 든 뒤에 잠시 눈을 감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게 웬걸, 시커먼 회사 잠바의 아저씨들이 남자에게서 나는 특유의 향(쉰내)을 풍기며 지나..

직장 2010.04.23

회귀

회사 선배들과 술 한 잔 하는 자리에서 평소 친했던 선배와 정치 얘기에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술이 한 잔씩 들어간 상태라 약간 붕 뜨기도 했었고 어디서 난 용기인지 선배의 "나 진짜 기분 나쁘거든. 그 말 진심이냐?" 라는 말에 "내 말을 바꿀 생각은 없다" 라고 답했다가 정말 한 대 맞는 줄 알았다-_- 다행히도 옆에 계셨던 분들이 "자자, 이제 그만" 이라며 말려 주셨고 술 기운에 몽롱했던 정신을 약간 차린 나도 후회 하면서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고, "미안하다" 고 했다. 나의 말이 얼마나 아니꼽고 기분이 나빴을지 정말 미안했다. 잘난척을 한 것 같고(개뿔 아는 것도 없으면서) 상대방이 느꼈을 불쾌한 감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옳던 그르던, 맞고 틀리던 자신의 생각, 철학(?)을 무시하는 발..

원씨 2010.04.21

세상꼴

#1. 토요일 아침 집 앞으로 날라 온 조선일보의 대문짝만한 사진과 글에 깜짝 놀랐다. 바로 옆에 다소곳이 놓여 있던 경향신문에선 찾아 볼 수 없던 기사들. "0시 5분 현재.." 로 시작 된 커다란 문자에 따르면 0시 5분 기사를 받아 돌리고 돌려 이미 집집 마다 배달 준비를 마친 신문과 바뀌었을 것이고 그 늦은 시각에 전국 방방 곡곡에 배달되어 신문을 찾는 독자들에게 소식을 전달했다. 얇은 두께의 경향신문이 앙증맞게 보이기도 했는데 현재 우리 언론 시장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더해서 천안함의 침몰을 '북한의 기뢰' 쪽에 비중을 두며 '좌시할 수 없다'는 조선일보의 모습과 대비 된 경향신문의 차분한 논조를 읽으며 '대한민국이 왜 희한하게 흘러가는지' 지극히도 보통 사람..

딴지 2010.03.30

YEHS 가입 문의

요즘도 심심치 않게 오는 메일 중 하나가 바로 YEHS(Young Engineers Honor Society / 차세대 이공대 리더) 가입 문의입니다. 많게는 한달에 3~4통씩, 꾸준히 오고 있는데 답변을 해드리지 못해 죄송스럽습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YEHS를 졸업하고 현재는 YEHS 졸업생 모임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저렇게 하더라, 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제 할일이 아닌 것 같아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요즘도 가끔 리퍼러 검색어 통계를 보면 "YEHS 가입 문의" 가 계속 발견되기 때문에 궁금한 점이 있으신 분은 아래의 주소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김경환 YEHS 4대 회장 wana_free@nate.com 정해승 부회장 jhs07231222@naver.com 남아현..

YEHS 2010.03.26

다른

원하는 노래를 제대로 듣고 싶어서 얼마 전 멜론에 가입했다. 워낙 흐름을 타지 못하는 인간이다 보니 신곡 보다는 예전에 듣던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경향이 있는데 당췌 구할 길이 없더라. 귀가 닳도록 들었던 서영은의 노래들. 귀에 꽂고 있으니 출근 버스에서조차 잠이 오질 않는다. 노래를 찾다 보니 서영은이 부른 '아마도 그건' 이 있었다. 영화 과속 스캔들에서 박보영이 부른(직접 부르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아마도 그건' 은 가사를 생각하지 않고 들으면 노래가 참 밝게 느껴졌는데 서영은은 참 구슬프게 불렀다. 같은 노래가 참으로 다르다. 그런데 가사를 잘 들어 보니까 어찌 보면 살짝 미소 지으며 불러도 그런데로 맛이 나고 오만상 찌푸리면서 닭똥같은 눈물 뚝뚝 떨어트리며 불러도 또 그 노래 그대로의 맛이 살..

낙서 2010.03.25

문자

술 한잔 하다가 생각나서 전화 했다는 후배들의 전화를 끊고 늘어지게 누워서 뒹굴거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뭐 대단한 놈이라고...' 항상 먼저 전화해 주고 생각해 주는 그 놈들이 너무 고마워 짧은 문자 한토막 보냈더니 아직도 같이 있는지 비슷한 답문이 돌아왔다. 사내 자식들끼리 주고 받은, 이곳에 옮길 수 없을 만큼의 낯뜨거운 내용이지만 문자를 한참 곱씹어 읽으며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날 뻔 했다. 유치한 대사 + 뻔한 대사 + 70년대식 대사로 옮기면 "짜식들" 이라는 한 마디와 함께 방그레, 웃음이 나왔다. 고마웠다. 별거 아닌 날 응원해 주고 믿어주는 그네들의 모습에 불끈, 힘이 났다. 같잖은 선배지만 손가락질 당하고 쯧쯧쯧, 혀 차는 소리를 듣는 그런 인간이 될 순 없잖아. 고맙다..

일상 2010.03.23

몸살

이번주 월요일, 팀장님께 사보기자 불허를 통보 받고 확인 사살로 지난 목요일 "포기했지?" 라는 말과 함께 참 많은 말을 들었다. 심지어 "원씨 실험실에 있나 없나 확인해보라, 어디가서 딴짓하고 있을지 모른다" 라는 말까지 하셨다니 뭐, 말 다했다. 난생 처음 관심사원으로 등록되는 순간. 좋게 좋게, 웃으며 받아 넘겨야 한다는 것, 회사 생활이란게 쉽지 않다는 거, 뭐 별에 별거 다 깨달았던 이번주는 참 힘들었다. 눈 밑의 살들이 파르르르 떨리기 시작했고 다크 서클이 생기면서 가뜩이나 없어 보이는 외모에 옵션 한 개 추가했다. 잇몸 염증은 다시 도지기 시작했고 목구멍이 슬슬 간지러워 지더니 결국 금요일 밤에는 온 몸이 으슬으슬 거리며 재채기에 콧물까지 가지가지 하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토요일 학원을 띵..

일상 2010.03.22

드라마 vs 현실

퇴근 버스를 운전하시는 기사 분들 중에 싫어하는 분이 한 분 있다. 대략 3~4주를 주기로 돌고 도는 것 같은데 이번주 "안산3" 행 9시 기사 아저씨가 바로 그 분이다. 좀 일찍 올라타 책이라도 보면서 출발 시간을 기다리고 있으면 독서등을 꺼버리는 바람에 열혈 독서광인냥 핸드폰 불빛에 의존해 책을 읽곤 하는데 불 좀 켜달라니깐 "차가 좀 쉬어야 되요" 하면서 안된단다. 7시 40분 퇴근 버스 기사 아저씨는 아예 활짝 켜놓을 뿐만 아니라 이 분 말고 다른 9시 퇴근 버스 기사 아저씨들 역시 독서등은 항상 켜 놓는다. 혹시 꺼져 있어서 미소와 함께 나근나근한 목소리로 부탁을 하면 역시 웃으며 화답해 주는데 이 분은 나의 나근나근한 미소에 '웃기고 있네' 라는 표정으로 답을 한다. 뭔가 다르다. 한 번은 맨..

직장 2010.03.16

월차

주5일 근무가 시작되기 전에 사람들은 어찌 토요일에도 출근 할 생각을 했을까. 실제 공익시절 매주 토요일에 출근하다가 어느 날 부터인가 격주로 바뀌었을 때 미친듯이 날뛰며 군대에 있는 친구들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더니 해제 1년여를 남겨두고는 주5일 근무로 변환, 다시금 뺑이 치고 있을 친구들을 일부러 끄집어 낸 적이 있었다. 공익이야 그렇다 쳐도 돈을 벌기 위해 주 6일 근무를 해야 했던 많은 이들은 어찌 어찌 견뎌 냈을까. 혹 누군가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점점 가면서 일을 안한다고, 옛날엔 참 열심히 일했다고, 주5일 근무, 주 44시간이 뭐 그리 대수냐고, 1년 휴일 다 합하면 150여일이 된다고. 그때와 지금의 생산성 차이는 얼마나 될까. 70~80년대 고도의 경제 성장을..

직장 2010.03.12

보통 사람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물며 뭐라도 되는 것 마냥 갖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후~ 하고 뿜어냈다. 담배를 태운다고 딱히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내게 담배는 그냥 있는 폼 없는 폼 잡으려고, 나 지금 힘들거든 혹은 나 지금 짜증나거든 이라는 표정과 함께 그것을 날려 버리는 듯한 자기 최면의 한 행동이 아닌가 싶다. 딱히 스트레스를 해소할 만한 다른 것도 없고 기분이라도, 생각이라도 지금의 상태를 잠시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의식적인 행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쪽팔리게 나이 29에 겉멋 들었나보다. 끊었던 기간이 아깝기도 했지만 그만큼 독한 인간도, 절제력이 있는 인간도, 나 자신에게 행한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인간도 못된다는 반증이다. 공부 한답시고 도서관에 앉아 책을 들여 보다가 '에이 ..

원씨 2010.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