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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후회

가끔씩 주변에서 묻곤 한다. 포스코를 포기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느냐, 라고. 그때마다 내 선택에 대한 미련을 남기지 않자는 나름의 개똥철학을 바탕으로 "안한다!" 라고 자신있게 이야기는 했지만 재료과(금속통합)로서의 포스코에 대한 Merit 는 옴팡지게 가슴 한 켠에 남아 재료과는 도통 찾아볼 수 없는 이 곳에서 슬며시 내 귀를 간지럽히곤 한다. "너 살짝 후회하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해 미련을 갖는 것은 고유가 시대의 에너지 낭비다. 낙천적으로, "나의 선택은 언제나 옳다"(경익 형님의 말씀) 라는 다소 건방진 생각을 개념에 탑재한 뒤 지금 나의 선택에 또 다른 미련이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어쩌면 삶을 대하는 보다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자세가 아닐까. 삶은 어찌될지 모르기에 후..

원씨 2009.04.18

혐오

4.29 재보선 지원 연설을 하던 유정현을 보았다. 깔끔하고 망가진 이미지에서 느꼈던 예전의 친근함은 사라지고 빤질 거리는 이마빡과 튀어나올 것 같은 커다란 눈두덩이를 보며 '남자 새끼가 느끼한 쌍꺼풀이 모여' 라는 생각으로 그의 손을 피해 지나갔다. 친박 무소속 이라는 분은 현수막에 커다랗게 박근혜와 찍은 사진을 올려 놓았다. 그게 '유리' 할거라는 생각, 실제로도 표심에 영향을 미치는 대한민국의 현실일테니. 쫘증이 확. 노무현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 중 그래도 가장 깨끗할 줄 알았다. 비록 자신은 모르쇠요, 집사람과 아들, 조카사위가 저지른 일이라지만(이 역시 어찌 밝혀질지는 아직 모를 일) 그가 갖고 있었던, 그가 내세웠던 '도덕성' 이 주위 사람을 감동시킬만큼 크지는 않았었나보..

딴지 2009.04.17

"꿈이 있어야 합니다.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교육 시간에 푹 삶아 늘어진 비겟살처럼 흐믈거리는 교육생들을 앞에 두고 영 강의할 맛이 나지 않으셨는지 강사님께서 동영상 강의를 보여주셨다. 나 역시 무섭게 감기는 두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리다 이마를 책상위에 붙인 채 잠이 들고 말았는데 강연의 핵심내용은 "꿈이 있어야 합니다.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였다. 그래야 자신처럼 유명해진대나 어쨌대나, 하여튼. 없는 실력으로 한창 기자를 꿈꾸던 군복무시절,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신문을 파고 사설을 외웠다. 어줍잖은 글들을 써내려가며 이것저것 참으로 많은 책을 뒤적였고 영어 공부 및 상식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때는 확고한 꿈이 있었다. 비록 게으름과 능력 부족을 탓하며 '기자'라는 꿈은 언감생심 ..

일상 2009.04.09

Black Like Me

옛날 영화에서만 보아왔던 흑인과 백인의 차별. 백인인 글의 저자는 간접적인 방식이 아닌, 자신이 직접 흑인이 되어 흑인과 백인간에 존재하는 장벽을 이야기한다(역시나, 똘똘하고 부지런한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한 민족 아래 다른 인종. 허나 조금 넓은 시선에서 둘러보면 우리 역시 같은 이유로 머나먼 땅에서 온 다른 인종들을 차별하고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도 오래되어 흐물거리는 묵은지처럼 뻔하디 뻔한 한국사회의 고질병은 언제쯤, 그리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요즘 즐겁게(!) 참여하고 있는 독서 스터디에서 이 책을 읽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한민국 사회로 좁혀와 동남아인들을 무시하면 안되지만 조심스럽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시선과 그들이 일으키는 범법과 우리가 그..

독서 2009.03.25

밤샘

#1. 간만에 밤샘작업.. 이 아니구나. 발표자료를 만들다가 오지게도 부족한 한계를 느끼다 보니 갑자기 하기가 싫어진다. 자료를 보충할 책들을 챙기다가 너무 졸려 커피 한 잔, 누나가 만들어 준 계란 후라이 한 개로 허기를 때우고 다시 앉았건만 집중이 되질 않는다.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시니어 관련 아이디어를 후딱 써서 메일로 보내고 전공 설명회 관련 문서를 열어 놓고 글을 정리하려는데 아, 만사가 귀찮다. 마음에 안드는 부분 몇 줄을 지우고 곰곰히 읽어보니 아예 통째로 바꾸고 싶어서 글을 싹 다 지웠다가 머리가 정상 상태가 아닌 것 같아 다시 뒤로. 뒷목이 뻐근한 듯한 느낌에 피로나 풀겸 욕조에 뜨끈한 물을 틀고 들어 누워 잠시 명상에 잠겼다. 샤워 타올로 문지르는게 귀찮아 바디샴푸를 미친듯이 욕조물에..

일상 2009.03.15

돌아보기

시간이 날 때마다 블로그의 글을 틈틈히 반추해 보았다. 근 한달이 걸렸는데 어색한 표현,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관계가 0점인 문장, 당췌 뭘 말하려는지 알 수 없는 글, 감정적인 글, 앞뒤 주장이 어긋난 글, 근거가 하나도 없는 글 등 부끄러운 포스팅이 마치 장애물 달리기 하듯 페이지 걸러 하나씩 연신 나타났다. 물론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10번 이상 되읽으며 지지고 볶고 퇴고(!?)를 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지우고 수정하고픈 글이 참으로 많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예전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참으로 어렸어' '대체 왜 그랬을까' 라는 짧은 생각에 아쉬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썼던 글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그때의 글에 대해 빨간펜을 댈 수 ..

원씨 2009.03.13

복합재료

만화 '몬스터' 에 보면 2차 세계 대전 뒤 ()() 나라에서는(확실치 않다)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엘리트 양산을 위한 모종의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엘리트 남자와 늘씬한 똑똑이 미녀를 커플로 만들어 우수한 종자(!)를 양산해 내는 방법. 만화책의 내용을 그대로 빌려오자면 "인종, 두뇌, 골격, 운동능력, 선택된 남자와 여자 사이에 아이를 만든다. 수십개의 커플에 의해 실험이 이루어졌고..." 라는 끔찍한 표현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개인적인 뻘(?) 생각으로는 국가가 마련한 '선' 자리가 딱 맞을 듯 싶다. 그러다 눈맞은 커플이 어디 한 둘이겠어, 서로 이쁘고 잘생겼다는데, 더해서 엘리트들... 하여튼, 그렇게 태어난 만화속의 쌍둥이 남매는 원씨 쌍둥이 남매와는 달리 오지게도 똑똑하고 인기많고 똑 ..

전공 2009.03.10

어머니

"어머님이 돌아가셨데" 갑작스레 받은 전화에 7시 40분차를 타고 부리나케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오열하는 친구의 누이와 그 옆에서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입술을 꼭 다문채 힘겹게 서있던 친구. 작고 다부진 체격으로 고등학교때 은근히 인기가 많았던 놈인데 끌어 안으면 바로 무너져 버릴 것 같은 그의 눈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나왔다. 지병이 있으셨기에 곧 이런 날이 오겠구나, 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겠지만 막상 다가온 어머니의 죽음에 그는 떨리는 다리로 겨우 버티고 서 있었다. 누구에게나, 너무도 큰 존재로 손을 내밀고 우리를 끌어안는 어머니이기에 그 존재의 상실은 어쩌면 더욱 크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너무 가까워서, 그 큰 사랑을 볼 수 없는지도 모른다. 너무도 사랑해서, 그 사랑을 ..

일상 2009.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