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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

새벽에 신발장이 무너졌다. 우당탕 소리가 나길래 김상곤씨가 들어온 줄 알았건만 고개를 돌리니 서서히 침몰해가는 타이타닉처럼 조립식 신발장이 쓰러지고 있었다. 이미 신발은 밑으로 나뒹굴며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상태. 바로 앞에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쓰레기 더미 위로 토하듯이 신발들은 흩어졌고 신발장 밑에 쌓아 놓았던 신문들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바닥에 몸을 핥으며 멀리멀리 퍼져갔다. 짧게 '니미' 를 외치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하이타이를 다썼다. 1.5kg짜리를 살까 하다가 곧 방을 비울거라는 생각에 1kg을 골랐다. 3,000원. 이제는 대충 가격도 때려 맞춘다.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를 돌렸다. 자취방 공동룸에 있는 세탁기 두 대 중 한 대는 자꾸만 삐걱거리더니 얼마 전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도..

일상 2008.06.18

엔뒤미온

엔뒤미온은 라트모스 산에서 양을 치는 미남청년이었다. 어느 맑고 조용한 밤,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는 하계를 내려다보다가 이 미남 청년이 자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 젊은이의 빼어난 아름다움은 이 처녀신의 차가운 마음을 따듯하게 녹여 놓았다. 결국 이 처녀신은 젊은이 있는 곳으로 내려와 그에게 입맞추고는 자고 있는 그를 지켜 주었다. 아르테미스는 젊은이가 만날 잠이나 자다가 재산을 잃지나 않을까 염려했다고도 한다. 그래서 여신이 그의 가축 수를 불려주고 야수가 양떼를 해코지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벌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중- 비록 '얼굴' 은 엔뒤미온이라는 꽃미남 청년은 따라가지 못할손 치더라도 마음만은 그보다 더욱 여유롭다. 내일 있을 시험과 화요일에 있을 '더블헤더' 시험에도 불구하고 나..

일상 2008.06.15

넋두리

#. H기업과 P기업. 선택을 마쳤다. 재료과로서의 메리트를 버리고 나는 이곳에 남기로 했다. 날이 밝으면 기업에서 전화가 올 것이고 인사팀 직원에게 '입사를 포기하겠다' 라는 정말 건방진 나의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 실로 정말 많은 고민을 했고 많은 이들에게 물었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해야 하는 일,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등을 따져 보았다. 근무지에 대한 고민 역시 빼놓을 수 없었다. 믿기지 않게도, 그토록 들어가기 어렵다는 P기업을 포기하는 것을 나는 선택하려 한다. 7번의 면접과 전공필기시험을 통과해 '소수' 만을 뽑은, 그리고 그 소수에 내가 포함되었다는 것과 사원 관리 및 윤리적인, 친환경적인, 욕을 오지게도 안먹는 기업임에도 '노조'가 없다는 것, 연봉이 적다는 것, 지방에 근무..

일상 2008.06.11

공대생의 비애

공대생 래현이횽. 모기업 마케팅 부서 서류 합격 후 1차 영어 면접 후기 면접관 : 솰라솰라솰라... 래현이횽 : 웰................. 면접관 : 스킵 래현이횽 : ..... 면접관 : 솰라솰라 new resolution? 래현이횽 : '새로운 해상도? 분해능? 뭐지 이게?' 면접관 : ..... 래현이횽 : ..... 면접관 : 굉장히 쉬운건데... 래현이횽 : ..... 그럼에도 불구하고 1차 면접 통과한 래현이횽, 내일 있을 최종 면접도 화이팅

전공 2008.06.10

6월초 일상

졸업앨범을 찍은 날 들어가지 못했던 전공수업의 과제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목요일 수업에 들어가니 여학우들이 아우성을 치길래 뭔일인가 봤더니 '6월 6일 현충일 아침 10시에 영어 오랄 테스트' 가 있단다. 니미, Photoluminescence, XPS, EDS, UPS 등 총 12개의 전공 관련 용어를 무작위로 펼쳐놓고 주사위를 던져 5분간 영어로 설명을 하란다. "교수님, 다음주에 해요" "교수님, 조금만 줄여주세요" 이와중에 나는 "교수님, 저는 오늘 알았는데요" 라는 말을 해대고 있으니 뭐. 결국 집에 가려던 계획을 뒤로 하고 간만에 책상에 앉아 펜을 굴렸다. 새벽 4시쯤 모든 용어의 영어 스크립트를 완성하고 한 번 쭈욱 읽어본뒤 너무 졸려 2시간만 자고 일어나자는 마음에 핸드폰 알람과 시계를 ..

일상 2008.06.06

상태2

아랑 : 저는 잘 생긴 사람은 보기는 좋은데 남자친구로는 싫어요 원씨 : 뻥치고 있네. 너 장동건하고 조인성이 남자친구면 싫어? 아랑 : 네, 싫어요. 별로에요 원씨 : 희한하네. 나는 김태희가 여자친구였으면 좋겠는데 아랑 : 크크크. 잘생기면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마음대로 걸어다니기도 힘들고. 장동건 봐요. 안됐어요 원씨 : 가끔 나는 그런 생각을 해. 내가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이성들이 다가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난 너무 힘들어 아랑 : 아니에요. 얼마나 편해요. 마음대로 다녀도 남들이 쳐다보지도 않고, 신경 안써도 되고, 그렇게 편한게 어딨어요? 오빤 좋은거에요.

원씨 2008.06.05

마담 뚜

나로 인해 쌩판 모르던 두 사람이 만나 호감을 느끼고 그것을 발판으로 좋은 감정이 모락모락 피어나며 결국엔 서로의 손을 잡는 일은 참으로 뿌듯한 일이다. 개인적으로 '사랑' 이라는 것이 풍족할수록 이 세상의 엔트로피는 쭈욱쭈욱 줄어드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나의 작은 노력(?)이 미력하나마 어떤이들에게 사랑의 꽃을 내려줬다면 참말로 만족한다. 이들 커플에 이어 또 하나의 커플이 탄생했다. 나의 중재가 아니었다면 한 놈은 만날 담배피면서 당구나 쳐댔을거고 또 한 명은 글쎄, 아무튼. 그런 그들이 부럽고 또 사랑스럽다. 내가 아니었으면 못만났어, 라는 말에 '우리는 그냥 하늘에서 떨어져 만난거야' 라는 말을 내뱉는 고것들이 참으로 얄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맙다. 이놈들, 이쁜 사랑하려무나. 그나저나, 내 코가 ..

일상 2008.06.05

늙음

시험때도 아니고 취업이 안된 것도 아니고(그것도 너무도 좋은 직장에) 가정사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며 연애는 못한지 반년이 지나가니 그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도 없을 뿐만 아니라 수업도 교양과 전공이 적당히 겹쳐있고 시험이 없는 과목도 여럿 있으니, 그리고 F 만 받지 않으면 졸업이 완료되기에 지금 내 삶은 딱 좋을것만 같다. 물론 아직도 끈을 잡고 있는 YEHS 고교방문전공설명회 준비와 이곳저곳에서 해야 하는 잡무(?)들이 조금 남아 있긴 하지만 시간만 내면 모두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더 없이 좋은 상황이다. 물론 이명박이가 뻘짓하고 있는 것이 심한 스트레스로 다가오지만 어느 정도는 예상했었기에 조금 참을만 하다. 허나 어젯밤부터 1시간이 두시간처럼 길게만 느껴진다. 에이포 용지 다섯장을 넘기며 흔적의..

일상 2008.06.03

예비군 훈련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다. 개인적 생각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쓸데없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예비군 훈련이 아닐까 싶은데 왜 나라가 나의 하루를 통째로 가져가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나라를 지키기는 개뿔. 예비군 훈련 강화한다고 하이바 빌려주면 다냐? 이게 실용이냐 니미. 여튼, 우박같은 소리를 내며 후두두둑,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하고 부슬부슬 음산한 빗방울이 공기를 가르기도 하는 가운데 그렇게 대충대충 시간을 흘려 보냈다. 실내 강의 때는 미친듯이 잠만 잤고 사격은 대충 후려 갈겼고. 너무도 무료해 다시금 설정샷을. 대한민국의 국군장병 여러분. 힘내세요.

기록 2008.06.03

포스코 최종 합격

"포스코는 어떤 사람이 가는거냐?" "재료과 에이스가 가는거라는데?" "아 그래? 거기 갈 수 있었음 좋겠다야" 재료과를 선택한 2003년. 재료과로서의 취업의 최고봉은 어디일까라는 질문에 '그래도 포스코' 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었다. 물론 요즘 졸업한 선배들의 말로는 S기업은 수년전에 가라 앉았고 포스코보다 좋은 것은 바로 고시! 라고 하니 뭐. 여튼, 작년 H기업에 합격허가서(?)를 받아 놓고 그곳에 뼈를 묻어볼까 하다가 '그래도 재료과는 포스코지' 라는 말에 홀딱, 예전부터 갖고 있던 깨끗한 기업, 친환경, 윤리적인 기업 이미지와 '동경(?)' 식으로 생각했던 기업이기에 올 초 입사 지원서를 넣고 1박 2일동안 5번의 면접과 전공필기시험, 그리고 최종 면접 두 번 등 총 7번의 면접과 필기시험을 ..

원씨 2008.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