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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청바지

팀 회식이 끝난 14일 밤. 종로 한 복판에서 양복을 걸친 건장한 청년 다섯은 캐리어를 끌고 방황하다 결국 찜질방으로 향하고 말았다. 다음날 점심 약속이 잡혔던 원씨는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변태들이 자주 출몰한다는 찜질방의 수면실에서 옷을 다소곳이 입고 짬을 내어 눈을 감았다가 담배 연기, 술에 쩌든 몸을 씻고 아침 일찍 찜질방을 나섰다. 캐리어를 맡아주지 않겠다는 주인 아주머니와 약간 실랑이를 벌였기에 좁은 찜질방의 사물함 속에는 구겨진 양복과 캐리어가 사이좋게 어울려 있었으니 행색은 한 마디로 '구려' 그 자체였다. 시원한 새벽공기를 마시려는 찰나, 찜질방 앞의 큰길을 막고 있는 대학생 무리가 보였다. 광복절을 맞이해 뭔 행사를 하는 모양이었는데 길을 기똥차게 막고 있었기에 5열 종대로 서있는 그..

원씨 2008.08.17

순간의 행복

현대자동차 공채 17기의 그룹연수가 끝이 났다. 6주간의 연수일정에 헥헥 거릴 때 쯔음 동기들 사이에 소록소록 솟아나는 '사랑' 에 함께 웃었고 회사 사정상 한 주의 연수일정이 사라진 뒤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린 연수기간은 잔잔한 추억으로 자리매김한 듯 하다. 전체 일정이 끝이 난 지난 목요일. 모처럼 다 함께 모여 소주를 따르고 맥주를 건배하며 마지막 시간을 함께 했다. 비록 다다음주에 있을 제주도 여행(?)때 다시 만나겠지만 이렇게 마음 편히 다 같이 함께 할 시간은 아마 앞으로 또 찾기가 어려울 듯 하다. 이제는 현업배치다. 물론 그 전에 현업 연수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분야로 나뉘어 따로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곧, 한 부서의 막내로, 신입사원으로, 열심히 삼겹살을 자르며 사회인으로..

일상 2008.08.15

불온서적

국방부가 '불온서적' 을 발표했다고 한다.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 사전을 뒤져보니 불온(不穩) [명사] 1 온당하지 않음. 2 {일부 명사 앞에 쓰여}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음. 한 마디로 현 MB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다는 소리인데 언제부터 우리 대한민국이 정권을 따르지 않으면 '강압적' 으로 억압하는, 그런 나라가 되어 버렸는지 씁쓸하다. 하긴, 이렇게 마음껏 명박씨를 까는 것도 어쩌면 십수년 전만 해도 불가능 했을 듯. 아까 뉴스를 보니 앞으로 촛불집회에 최루탄도 사용할 것이라 하고 색소가 첨가된 물을 뿌려 끝까지 추적 수사를 한다고도 하는데 이건 뭐 병신찐따삐꾸도 아니고. 80년대로(비록 내가 80년대에 태어났지만서도) 회귀..

딴지 2008.08.02

끔찍했던 한 주

#월요일 - 해병대 교육 첫날이었다. 질질 캐리어를 끌고 연병장(?)앞에 쭈욱 서 있으니 갑자기 핸드폰을 걷으란다. 담배도 다 내란다. 갑자기 열차 열차가 반복되고 앉어, 일어서를 외쳐대는 교관 앞에서 '이게 뭔가' 라는 끊임없는 의문을 품으며 결국 하라는대로 다했다. 몸이 덜 풀렸는지 간만에 입어본 군복을 받아 입고 열심히 뛰다가 앞에 있던 사람의 팔꿈치에 안면을 정면으로 강타 당했고 결국 코에서는 시뻘건 코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껏 살면서 코 파다가 흥건하게 코피를 흘린적은 있었지만 한번도 누군가에게 맞아서 코피를 흘린적이 없었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교관을 찾아가니 머리에 물을 뿌리고 휴지를 건낸다. 끝인가? 점심식사를 마치고 친구들이 '이건 병원 가봐야 해. 많이 부었어' 라는 말에 쫄아..

원씨 2008.08.01

어른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신만의 잣대(나는 이것을 개똥철학이라 부른다)를 설정해 놓고 그에 발맞추어 생활 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가령, 시간 약속을 칼같이 지키자, 상대의 의견을 무시하지 말자,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지 말자, 모든 일에는 배울 것들이 가득하다, 걸으면서 담배피지 말자, 침을 뱉지 말자,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리자,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지키자 등의 자잘한 것 부터 '하지만 이 개똥철학은 누구보다도 유연해야 한다' 라는 큰 틀까지, 모든 행동에 앞서 머리를 먼저 굴리는 일은 정말 '인생 피곤' 이다. 그래서 더 늙어 보이는지도 모르겠지만서도.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나의 생각의 범위나 그 정도가 현저히 어리다는 것에 있다. 남들이 보기에 '존경' 을 받을만한 정도의 그릇을 갖기 위해서..

원씨 2008.07.28

관심

뉴스를 보려고 안방 침대에 누워 티비를 켰더니 축구를 하고 있었다. 올림픽 대표 경기였던 것 같은데 예선인지, 그냥 평가전인지 하여튼 빨강티에 하얀 바지를 입은 11명의 올림픽 대표 축구 선수들의 모습이 괜시리 낯설었다. 언제부턴가 '축구' 에 열광했던, 행여 한국이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못나가면 어쩌지, 아시안 게임에서 최소 4강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큰일인데 하던 내가 월드컵을 가던 말던, 올림픽에서 중국에서 지던 말던 별 관심이 없어졌다. 그러고 보니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이 10위를 하던 4위를 하던, 예전과 같은 아쉬움과 기쁨은 없을 것 같다. 무심해진 건가 아니면 애국심이 사라진 걸까. 그것 보다는 그 이외에 신경 쓸 일들이 너무 많아서일까. 격투기에 대한 관심도 그렇다. 집에 케이블이 달렸던 20..

원씨 2008.07.28

얼라 원씨

8월 졸업이기에 나는 아직 YEHS인, 이라는 생각과 너무도 좋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참석한 YEHS세미나. 빠지지 않고 참석했지만 오늘만큼은 왠지 느낌이 달랐다. 친정에 온 느낌? 허나 그 설레임은 약간의 분노 게이지와 덧붙여지면서 새로운 떨림으로 변하고야 말았다. 서비스 사이언스에 관한 발표자의 말에 조금 기분이 언짢았다. YEHS 게시판에서도 한 번 논쟁이 붙었던 내용이었는데 '도태된 자' 들에 대한 자세(?)라고 하면 맞을까 모르겠다. 게시판 논쟁은 제도적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경쟁에서 밀린 자들을 우리는 'Looser' 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물음에 "그게 당연한 것이다" 라는 친구와의 논쟁이었고 오늘은 "그들이 더 노력해야죠" 라는 대답에 '토'를 달면서 시작되었다. 아직 나도 ..

원씨 2008.07.27

연수

지난 일주일간 5만 7천여번의 박수를 쳤고 160여회의 함성을 질렀다. '신입사원 다운 패기' 라는 것이 열정, 도전, 창의 뭐 이런것을 말하는 것 같지만서도 통제를 위한 '군대식 문화'의 연장은 어쩔 수 없나보다. 하여튼, 듣기로는 가장 빡쎄다던 1주차 연수를 잘 마쳤다. 팀별 뮤지컬 공연때문에 '힘들다' 라는 말이 선배들 사이에서 나온듯도 한데 잠을 많이 못잤을 뿐, 꽤 재밌는 경험이었다. 비록 나의 역할은 '자동차 오른쪽 뒷바퀴' 였기에, 게다가 가면을 쓰고 연짱 앞구르기만 하면 되는 몸때우기식 역이었기에 쉽게 해낼 수 있었다. 다만 양 어깨에 멍이 들고 경추뼈가 빨갛게 부어오른 것이 안습이긴 했지만. 모두들 정말 잘나보였다. 말도 잘하고 빼지도 않고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척척 만들어내는 모습에 이..

일상 2008.07.21

연륜

나이를 먹으며 '연륜' 이라는 것을 가장 크게 느낄때는 서울의 어느 곳을 가더라도 '아, 이곳은 한 번 와본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때다. 구로, 가산디지털단지, 신림, 사당, 산본, 범계, 안국, 교대, 강남, 신촌, 신천, 잠실, 낙성대, 오이도, 정왕, 보문, 수유, 길음, 부천, 인천... 어디를 가더라도 낯익은 길이 나타나고 안좋은 머리 굴려가며 기억을 더듬어가면 희미한 추억으로 무엇을 했었는지,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달달한 실루엣 영상이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지우개 냄새를 맡을때면 항상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처음 학용품을 선물받고 기뻤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어떤 장소에서 느껴지는 향. 그리고 떠오르는 그때의 내 모습.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일상 2008.07.09

정리

요즘들어, 특히나 지난주 부터는 하루에 한 개, 혹은 두 개 이상의 스케쥴을 소화해 내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가만히 내뿜는 숨에도 알코올 향이 묻어나고 연신 흘리는 땀에서도 담배내와 함께 코를 톡 쏘는 소주향이 느껴진다. 머리도 약간 알딸딸 해 졌는지 오늘의 약속을 내일의 약속으로 착각, 약속을 펑크내기도 하고 오늘처럼 '오늘은 무슨 약속이 있었지?' 라는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두 개의 약속이 한방에 밀려오는 바람에 이 약속 도중에 잠시 저 약속과 함께, 그러다 보니 저녁을 두 번 먹는 무시무시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에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급약속도 생겼다. 내일, 아니 오늘 오후에는 친구들과 급하게 정해버린 레프팅을 위해 떠나야 하고 목요일..

일상 2008.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