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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랑

자식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한국처럼 가족주의가 강한 나라에서 내리사랑은 '정' 이 한바가지 듬뿍 담긴, 탐스러운 표현이다. 반대의 표현도 있다. 손 윗사람의 아랫사람에 대한 사랑을 일컫는 내리사랑에 견주어 아랫사람의 손윗사람에 대한 사랑을 일컫는 치사랑(올리사랑)은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라는 속담이 말해주듯이 내리사랑에 비해 많이 부족한 사랑이다. '치사랑 도덕실천운동본부' 라는 단체는 "치사랑을 해야 하는 이유"로 부모님께 빚진 생명, 이를 갚지 않는다면 우리들이 일하고 노력하는 것이 그 빚을 갚는데로 가게 된다며 치사랑으로 우리가 빚 진 것을 돌려드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과한 치사랑이 눈총을 받고 있다. 고려대학교 이필상 총장의 논문 표절에 대한 학우들의 치사랑이 바로..

딴지 2006.12.29

Diamond spark

'재료전자기물성' 기말고사 시험 문제 중에 "왜 다이아몬드를 자를때 반짝 거리는가?" 라는 문제가 있었다. 영어로 Why diamond 샬라샬라 cut 샬라샬라 spark 샬라샬라? 라고 문제가 나왔는데 처음 문제를 읽으며 나는 "왜 다이아몬드를 자를때 불꽃이 튀는가?" 라고 해석을 하고야 말았다. 책상영어의 한계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어라.. 다이아몬드를 자를때 불꽃이 튀나?' 일단 의문을 갖고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문득 다이아몬드 칼로 얼음을 자를때 금새 손이 차가워지던 생각이 떠올랐다. 다이아몬드는 열전도도가 굉장히 높기 때문에 손으로 잡고 얼음을 자를 경우 체온이 다이아몬드를 타고 전해지며 얼음을 녹이게 된다. 그러면서 얼음의 차가운 열(?) 역시 손으로 전달이 되며 순간 으스스~ 한 느..

전공 2006.12.28

다시 읽기

대학교 1학년때 부터 나름 모아왔던 책들이 책장에 가득하다. 너무 지저분해 작년에는 책장을 새로 들여 놨었는데 어느덧 책 위를 덮고 덮어 다시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내겐, 사랑스런 자식 처럼 마냥 이쁘기만 하니 나중에 애를 낳고도 그럴까봐 걱정이다. 다독이 목적이었다. 퇴마록과 같이 재미 위주의 소설만 읽던 독서 습관에서 이제는 대학생이 되었으니 조금 똘똘해져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비소설을 접하기 시작했고 빌려보던 습관에서 책을 소장하는 것으로 조금씩 바꿔나갔다. 그러다 보니 책은 하나 둘 쌓이기 시작했지만 틈틈히, 너무 이해가 가지 않아 덮어 놓은 책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도 책 장 곳곳에서는 뽀얀 먼지에 둘러 쌓인 채 다소곳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도서가 상당하다. 나의 능..

독서 2006.12.28

이건희 개혁 10년

며 칠 후 삼성에 입사하는 친구의 부탁으로 간만에 장문의 독후감을 써봤다. 나 역시 이번 겨울에 인턴을 하게 된지라 관심이 있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소곱창이 너무 먹고 싶어서, 허락을 한 일이었건만 하루 사이에 책을 읽고 다섯장 분량의 글을 쓴다는 것이 내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내내 문득,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때 시작된 선배들의 '주입 교육' 이 떠올랐다. "야, 고연전이냐 연고전이냐?" "연고는 상처난 곳에 바르라고 있는 약일 뿐이야" 이제는 '고연고연' 이 너무 익숙하고 '연..' 하면 무언가 어색하기까지 할 정도로 그 교육의 힘은 대단했다. 어찌 되었건, 그 독후감에 썼던 표현을 인용해 한 문장으로 이 책을 요약해 보자면, "이건희 삼성 회장, 그는 내게 자각과 자극,..

독서 2006.12.27

反求諸己

지금부터 3천년 전 중국에는 하나라(夏朝)가 있었다. 어느 날 제후인 유호가 군대를 이끌고 하나라를 침략했다. 하나라 왕 우는 아들 백계를 내세워 유호군대를 격파하도록 했다. 그런데 백계는 어이 없게도 참패하였다. 이 때 백계의 부하들이 다시 한번 싸우자고 요청했다. 백계는 이렇게 답했다. "다시 싸울 필요 없다. 내 근거지가 그에 비해 작지 않고, 나의 병마 또한 그에 비하여 약하지 않으나 도리어 우리가 패하였으니 이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이는 나의 덕행이 그에 비하여 부족하고, 부하를 가르침이 그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자신으로부터 원인을 찾아내 더욱 노력하고 자신부터 바로잡는 일에 열중해야 옳은 것이다." 이 때부터 백계는 뜻을 세우고 분발하여 날이 밝기가 바쁘게 일어나 일하고, 맛있는 ..

전공 2006.12.25

꽃사슴

"형, 들어가자마자 두번째에 앉은 애 누구야? 아니 후광이 장난 아닌데!!" 과도관에 꽃사슴이 출현했다. 얼마 전 부터 과도관 1층 24시 열람실 문 앞에 앉은 그녀는 이공계 캠퍼스의 심한 성비불평등 현상에 잔잔한 파문을 던지며 핫 이슈로 급부상했다. 역시나, 이공계의 여성 입문은 넓고도 넓다(?). 남학우들의 보호본능을 충분히 자극하는 연약한 모습과 귀여운 외모에 과도관은 나름 들끓고 있다. 부르는 별명 역시 가지가지. 머리에 꽃 모양 핀을 꽂고 다닌다 해서 "꽃소녀" 라고 부르는 그룹(?)도 있고 "꽃댕이", "귀염이" 그리고 우리 그룹이 부르는 "꽃사슴" 까지 그녀를 나타내는 표현이 그녀에 대한 관심도를 확인해 준다. 벌써 한 남학우는 작업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고 그 남학우가 가방을 들어주는 것을..

일상 2006.12.25

작전실패

일주일에 한 개, 두 개씩 이어졌던 1차 시험과 중간고사와는 달리 9일 안에 6개의 시험이 몰려 있던 기말고사. 점수가 하나 둘 뜨면서 작전의 실패가 현저하게 두드러지고 있다. 중간고사는 그럭저럭 평균을 넘김으로서 일차 목표에 가까이 이르렀건만, 더블헤더였던 '금속재료'와 '재료전자기물성'을 개판치고 연이어 다음날 보았던 '반응속도'까지, 쭈루룩 피똥쌌다. 그나마 물리화학과 공업수학, 다변수를 안전권으로 살려놓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더블헤더임을 감안, 전 날 밤을 새고 연이어 시험 두개를 본 뒤 바로 잠을 자지 않고 이틀 연속 밤샘을 강행했다. 결국 시험 당일 아침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졸고 졸고 또 졸다가 시험을 약 두시간 앞두고 정신이 번쩍 들고 말았고 머릿속은 이미 몽롱한 상태였다. 더군다..

전공 2006.12.24

연말

모처럼 강남역에서 학원 친구들을 만났다. 내년이면 굴지의 모기업에 입사하는 친구와 유학길에 오를 친구. 간단한 맥주에 나초와 감자칩을 바삭바삭 씹어 먹으며 그간 풀지 못했던 회포를 풀었다. 누구는 모한다더라, 걔는 거기 붙었잖어, 둘이 헤어졌어?, 난 언제 졸업하지, 남자는 다 그래, 크리스마스날 모하냐, 낼 모레 애들 만나기로 했어, 차 막히는데 지금 시간에... 다들, 건강히, 아무 탈 없이, 잘 들 살고 있었다. 연말이면 확인하는 서로의 안부. 비로소 연말임을 느낀다. 버스의 줄은 끝이 없었다. 이거 안산가는 줄인가요? 도미노처럼 나 역시 뒷 사람에게 '네' 라는 대답을 해주며 주머니에 손을 꼬옥 넣었다. 코와 입으로 뿜어져 나오는 입김이 예전처럼 설익지 않았다. 완연한 연말이었다. 한 커플이 줄을..

일상 2006.12.23

아버지 친구의 아들로, 어렸을 적 부터 같이 지내왔던 친구 한 명이 있다. 그닥 친한 것은 아니지만 가족 단위로 모임이 있을때면 같은 또래이고 하다 보니 자주 붙어 있던 기억도 있고, 또 같이 학교를 입학하고 졸업하다 보니 자연히 주위의 입에도 동시에 오르 내리기 마련이었다. 어렸을 적 비싼 메이커 옷을 얼마를 주고 사달라고 했다느니 공부를 안한다느니, 라는 말을 들으며 그 친구는 언제나 나와 누나의 비교 대상 중 한 명이었다. 너네는 그러지 않으니 다행이구나, 라는 말에 우쭐하기도 했었고 지방의 모대학에 입학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리고 군대를 제대하고 음식을 배우겠다며 이태리 유학을 보내 달라고 조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언제나 나와 누나는, 비교대상으로서 우위를 점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

일상 2006.12.20